우리는 왜 서로에게 위태로운 섬이 되었을까

일그러진 권위와 욕망 속에서, 다시 학교의 시간을 생각한다

by지인

오늘 아침 우연히 mbc PD수첩의 한 영상을 보았다. 첫 내용은 "검사 아빠 정순신과 학교폭력"

두 번째 내용은 " 지금 우리 학교는 : 어느 초임 교사의 죽음"이었다. 2023년 방송된 것이었다.


서이초등학교 초1 담임 선생님의 자살 사건이 두 번째 내용이었다. 그때 우리는 굉장히 많은 충격을 받았고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의아해했다. 학부모의 민원, 교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학부모와의 협의와 의견 충돌, 나도 학부모지만 선생님들이 모두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믿고 맡긴다.

그게 우리 아이가 선생님을 따르고 학교를 좋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 나도 큰 아이가 친구에게 주먹으로 배를 세게 맞아서 집에 와서 우는데 순간 화가 났다. 그리고 선생님께 자초 지정을 들으려 했으나 연락이 어려웠다. 후에 담임교사는 때린 학생을 두둔하고 맞은 내 아이를 학교에서는 괜찮다고 하더니 집에 가서는 딴 소리를 한다며 이상한 아이 취급을 했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선생님과 나 사이에는 두꺼운 시멘트 벽이 가로막혀 있음을 느꼈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정리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리고, 그대로 담임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아이가 상처받을까 걱정되는 애끓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달라'라고.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침묵뿐이었다. 다음 날 선생님은 병가를 내셨고, 학교는 '번아웃으로 인한 분리 조치'라는 사무적인 용어로 설명했다.

그리고 교감선생님의 상담 호출을 받아서 갔고 내용은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화살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세상이 무섭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학교에서의 약자는 학부모인가?

선생님들은 교권이 무너졌다고 한다. 근데 나는 아닌 것 같은데, 더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주장하시는 것 같은데. 그 권리와 이상과 현실이 부딪치는 것 아닐까? 학교는 치유의 공간이 아닌 각자의 이해관계가 격돌하는 전장이 된 것 같았다


요즘 여성의 학력이 예전보다 많이 올라갔다. 그리고 내가 사는 세종은 고위 공무원이 많다. 공무원의 배우자도 있고, 높은 학력이 온라인 게임의 서열이 곧 자신의 등수처럼 여기고 그 기득권을 자녀에게도 심어준다.

학교가 바로 서야 한다 외치지만, 우리는 각자가 자신은 어떠한지 모른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제일 힘들고, 학부모는 학부모가 제일 약자고, 학생은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외나무 위에 위태롭게 산다. 다 각자가 위태롭다. 전 국민이 스트레스 최상, 예비 정신과 환자인 것이다.


권위와 욕망이 다 일그러져 있다. 일그러진 자화상을 안고 사는 우리가 불쌍하다.

가슴이 아프다. 세상이 조금 편안해졌으며 좋겠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고 부모는 자녀의 울타리가 되어주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학생은 그들의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청하고 학업과 체력을 모두 성실히 임하는 근면한 사람이 되어간다면 더없이 소중한 시절이 될 것 같다. 그 시절 지금 현재. 시간은 쏜살같다.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라는 자원을 우리는 매일 아침 선물 받는다. 그 선물을 행복하게 잘 받고 잘 쓰면 좋겠다.


학교에서 더 이상 아프고 힘든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이초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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