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차 부부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

당신에게 듣고 싶었던 말, ‘고생했어’

by지인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일박 이 일은 친정 식구들과 이박은 우리 가족 여행으로 계획하고 삼박 사일 일정으로 강릉으로 출발했다. 2026년 5월 31일에서 2026년 6월 3일까지의 일정이었다.


열흘간의 선거 운동원으로 활동한 직후라서 아직 피곤과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눈이 푹 들어갈 만큼 힘이 들었다. 여행을 즐길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강릉 도착전 휴게소에서 청주에서 출발한 친정오빠와 부모님을 만나 간단히 간식거리를 먹고 다시 출발.

강릉 중앙시장에서 만나 장칼국수를 먹고, 시장에서 이것저것 부식거리를 사고 카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입실 시간에 맞추어 세인트존스 호텔로 갔다. 너무도 럭셔리한 호텔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사 인실인 우리 방에 모여 시장에서 사 온 부식거리를 펼쳐놓고 요기하고 저녁을 무얼 먹을지 상의하는데, 갑자기 복통이 심하게 왔다. 윗배의 통증이 너무 심해 허리를 펴기 힘들 지경이었다. 결국 당직 병원을 수소문하여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왔다. '위경련'이 온 것이다. 피로감의 누적으로 온 소화장애였다. 그 후 음식을 조심해야 해서 거의 맛난 음식을 보기만 할 뿐 먹지 못해 아쉬웠다.


다른 식구들이 저녁을 먹고 2차를 즐기는 동안 나는 방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조금 안정이 되어있을 무렵

친정엄마 칠순 파티를 하러 내려갔다. 칠순 생신상 까지는 아니고 풍선, 현수막, 그리고 롤로 말아있는 용돈봉투를 풍선에 달았다. 풍선을 날리면 쑥 하고 올라가서 줄줄이 용돈 봉투가 따라 올라가는 용돈박스였다. 이걸 준비해와서 사진 찍어드리고 선물하는 정도였다. 준비를 해준 새언니와 친정오빠에게 감사했다. 엄마는 눈물을 살짝 보이실 만큼 기뻐하셨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와 해변을 산바카라하고 퇴실 후 이른 점심을 먹으러 이동, 식사 후 친정식구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 가족만 남았다. 강릉은 여러 번 여행을 해본 곳이어서 거의 가본 곳이라 이번에는 속초로 여행해보기위해 이동했다. 속초에 도착해서 낙산사에 가서 구경하고, 숙소에 들어 쉬고 저녁을 먹으러 중앙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고 밥도 먹었다.


다음날 설악산 흔들바위까지 등산을 하고 내려와 점심을 먹고 쉬다가 나와 저녁을 먹고 속초아이 관람차 야경과 영랑호수윗길 산바카라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속초시립박물관, 속초등산박물관을 견학하고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긴 여정으로 피곤하지만, 주부로서의 일을 하느라 도착하고 집에서 계속 움직였다. 4시간여를 운전하고 온 남편은 누워 휴식을 취한다. 운전도 고된 일이니 이해한다.

여행중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오는 날 점심, 속초해녀마을이라는 곳에서 식사를 하는데 식사 전 계란프라이 셀프바가 있어 프라이를 하다 옷에 좀 묻었나 보다 모르고 식사할 장소로 가니 이미 주문한 음식이 모두 나와 있었다. 바쁘게 내려놓고 앉으려는데


"옷 앞지락에 뭐가 묻었네."


"어?"


하며 툭툭 털어서 지우려 하는 나의 행동에 언짢은 남편은


"음식 위에서 털면 어떡해?"


약간 높아진 음성에 나 역시 화가 났다. 이 순간 큰 아이는 무슨 일이냐며 계속 보채듯이 물었다.


"옷에 뭐가 묻었고 아빠가 이야기해서 털었는데 음식 위에 털었다고 뭐라고 하시는 거야."


조금 화가 난 말투로 언성이 높아지고 순간 나도 당황했다. 큰 아이에게 화풀이를 한 것 같아서 말이다.

그 말을 하는 동시에 남편의 혀 차는 소리, 한숨 소리들이 들리고 기분이 나빴다.


이 상황에서 내가 기분이 나쁜 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상황의 기분을 부여잡고 나오지 못하는 지금 벌써 하루가 다 지나고 있는데도 그 순간에 있다.


기대하는 모습과 반대인 남편에게 화가 난 걸까?

좀 더 다정하고 예쁘게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일까? 절대 그럴 수 없는 사람인 걸 아는데 난 왜 16년 동안 계속 바라고 기분 상하는 과정을 반복할까?


감정에 갇혀 더 피곤하고 힘든 나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


답답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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