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라는 이름의 감옥을 지나, 비로소 숨을 쉬는 새벽
일찍 눈이 떠진 아침. 휴대폰의 날씨는 비가 온다. 이중창과 블라인드에 가린 지금 나의 공간은 고요하다.
그 정적과 고요를 깨기 위해 창을 열어보니,, 비가 세차게 내린다.
어렸을 적 나는 비를 참 좋아했다. 주택에 살아 지붕에 맞는 소리, 창문에 부딪혀 나는 소리, 골목을 지나가는 차 바퀴에 밟힌 소리, 어떤 교향곡의 향연보다 내게는 행복감을 주는 소리였다.
그뿐 아니라 냄새도 좋다. 공기에서 나는 냄새, 흙이 흠뻑 젖어 피어내는 냄새, 바람게 섞인 냄새 들로 나는 깊이 숨을 쉬어 계속 코 끝에서 폐 속까지 온몸으로 냄새가 젖어들도록 계속 호흡했다.
비와 함께 과거로 회귀되는 시간,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비야, 옛날에도 지금도 넌 나의 친구야.
반가워. 소리로 냄새로 공기로 바람으로
듣고 맡고 느끼고 몸에 닿는 기억들이 너를 계속 머물게 해
비와 함께 온 과거의 기억들.
억압과 인내의 시간들.
틀에 짜인 학교, 따라가는 아이들, 그 공간 속에서 꽉 막혀버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항상 이게 맞아? 굳이 이 선을 따라가야 해?
줄을 세운 듯 , 성적과 가야 할 길에 우리는 계속 빗겨 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숨 막히는 감옥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럼 슬롯는 반항이라는 수갑을 채워버린다.
좀 자유로운 사고와 개방적인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달랐을까? 민주적인 토론으로 생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계속 숨 쉬듯 살아있는 공간에서는 꿈을 꾸고 자유롭게 날 수 있었을까?
그 누구도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그래야만 했다.
그 통제와 억압은 하나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기 힘든 과오였다.
요즘 청소년은 좀 다른 것 같다. 소신 발언이 그래도 먹히는 시대이니까.
근데 지금도 꽉 막힌 고속도로 속에 사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시대는 바뀌어도 그 틀에 갇힌 사람들은 유전처럼 이어진다.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냥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서 조금 자유롭고 싶을 뿐이다.
이 새벽 빗소리에 자유를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