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겨진 글자들 사이에서 자유를 유영하다
스스로에게 말해 주세요.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을 받기 위해 살아가지 않겠다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 때문에 가 아니라, 내 가슴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한다고. 사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르지 않기엔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혜민 스님의 글을 보고 난 왜 이게 어려울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
계속 고민일까?
알지만 피하고 있나?
두려운 걸까?
바카라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굉장히 느리고 천천히 읽는다. 정독이라기보다는 한 줄 읽고 사고하고
두 줄 읽고 나와 대화하고 이런 시간들이 많이 들어간다. 좀 나에 대한 생각과 작가의 생각을 나 스스로 토론하고 사유하고 계속 이야기하며 바카라을 보는 편이다. 그래서 바카라꽂이에 꽂힌 바카라이 많아도 정작 읽은 바카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읽은 바카라이 많이 없어 내가 바카라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가끔 부끄럽다.
바카라을 사는 행위는 깊은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설레고 바카라 냄새가 좋다. 서점에 앉아 읽던 바카라들이 좋았다. 요즘 세대에게는 디지털 바카라이 익숙하겠지만 난 아직도 종이바카라이 좋다. 그 종이의 질감, 잉크의 냄새, 글씨의 모양을 모두 다 시각 촉각 후각으로 느낀다. 오감으로 읽은 바카라은 살아있다.
과거와 현재 나는 내가 바카라을 좋아한다는 것이 죄인 듯 많이 혼이 났다. 바카라을 사는 행위는 죄를 짓는 것이었다.
엄마는 바카라이 자꾸 쌓이고 많아지는 것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셔서 싫어하셨다. 결혼 후 남편도 같았다.
굳이 도서관이라는 곳이 있는데 왜 바카라을 사냐는 것이다. 좋아하는 바카라이 내 손이 닿는 곳에 있어야 한다. 내게 바카라은 응급약과 같다. 협심증의 니트로글리세린 같은 , 천식에 쓰이는 호흡기 스프레이처럼.
그렇게 내게 바카라은 심폐소생술 같은 존재였다. 그것이 계속 부정당하면서 나는 나의 존재가 증발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궁금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사람일까?" "내가 태어나 해야할 소명은 무엇일까?"
등등 존재에 대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내게 좋아하는 일 중에서 또 하나는 글쓰기다. 글은 너무 편하고 나는 나를 그대로 드러내기에 거리낌이 없다.
그게 좋다. 나를 다 보여줄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정말 좋다. 억제되고 억압되지 않기를 바라는데.
삶은 쉽지 않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글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니, 조금 마음에 죄를 지은 기분이 든다.
나는 다 드러내는 게 아무렇지 않지만, 상대는 그것이 너무 힘들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그냥 세상 밖에 발가벗겨져 던져지는 것이니 정말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거부를 나타내기도 한다.
"글은 남겨지는 것이라서 계속 기억에 저장되고, 쓰는 사람의 생각과 읽은 사람의 생각이 다르고
뉘앙스에 따라 달라지고, 기록되는 것이기게 싫다."
말은 뱉어면 그후 사라진다. 글은 기록되고 저장되고 그리고 달리 해석된다는 것이다.
바카라을 꼭 출판하고 싶은 나의 소망이 결실이되어 나올지 모르겠다. 내적인 갈등이 너무 심해 계속 망설이고 들락거리는 마음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글 쓰고 바카라 읽고 사유하고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시, 공간을 넘나드는 차원의 공간으로 가는 세상에서 유영하고 싶다.
이제 조금씩 나아가는 순간, 계속 갈등이 된다.
나는 나를 믿고 나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