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5년 만에 나를 믿기로 했다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과 '엄마'라는 갑옷을 벗고 마주한 진짜 나

by지인

오랫동안 머물렀던 나의 고민은 존재감이었다. 태어나 살아가며 나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인정받는 경험을 많이 받아보지 못하였다. 스스로 잘 보이기 위해 생존을 위한 투쟁처럼 계속 남들의 기대를 살펴야 했다.

어느 순간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에 너무 올인되어 있었다.


"나도 욕을 좀 해보고 싶어."


"하지 마, 너랑은 안 어울려."


"왜?"


타인의 말에 난 왜 라하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난 왜 이렇게 된 걸까?

10살 즘 나를 계속 암흑으로 밀어 넣은 것은 ' 나는 누구지? 나는 왜 태어난 걸까? 나는 왜 사람이지?'

이런 것들이었다. 나는 어느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고 존재에 대한 물음만 계속 내게 물었다.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나의 관심과 주변의 관심은 달랐으니까.

그렇게 혼자 계속 생각이 깊어졌다. 사고의 깊이만큼이나 나는 그 알 수 없는 회오리에서 나오고 싶었다.

나오지 못하는 게 무엇 때문이지 몰랐다. 그냥 우울했고 무기력했으며 입을 다물고 상대를 계속 응시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였다.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고민이 시작된 지 15년쯤 흐르고 나는 자아수련을 하고 명상 수련을 하며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속 시원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냥 답답하기만 했다.

그 고뇌 속에 나는 여러 역할을 해나가야 했다. 그중 가장 힘든 건 엄마라는 역할이었다.

무겁고 부담되는 갑옷 같은 그 역할의 무게감에 나는 나를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고민의 시작 후 35년이 지나간다.


'나는 왜 태어난 걸까? 나는 왜 사람일까? 나는 누구 인가?'


밥 하는 사람인가? 글 쓰는 사람인가? 먹고 뚱뚱해진 모습이 나인가?

우울한 나? 가끔 조증으로 붕 떠있는 나? 잠 못 자고 계속 생각물기에 깊이 빠진 게 나일까?


나는 누구일까?


어느덧 물어보는 나와 나를 떨어져서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물어보는 나일까? 여러 다양한 나를 계속 관찰하는 나일까?

나는 나를 그렇게 떨어져 보고 그리고 천천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조금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 존재의 나에 대해 그대로 믿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항상 부정했는데 이쁘지도 날씬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못생기고 뚱뚱한 무식한 사람이라고 나를 규정했다.

세상의 기준에 너무도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난 힘들었다.


근데 그게 그냥 놓아버리니 그대로 나를 보고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존재 자체로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믿는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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