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마세요, 당신의 마음도 아이의 내일도

교권이라는 이름의 벽,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눈맞춤’에 대하여

by지인

1. 흉터로 기억되는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나는 1981년에 태어났습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참 많이도 맞으며 컸습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매’는 늘 공기처럼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매가 무서워 억지로 펜을 잡았고, 매가 무서워 어른들의 기분에 나를 맞추며 살았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종아리를 맞던 날들. 채찍질 당하는 듯한 통증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학교라고 달랐을까요. 단체 기합은 일상이었고, 떨어진 점수만큼 매질이 이어졌습니다. 그 시절의 권력은 참으로 무식하고도 명쾌했습니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는 그 한마디면 모든 폭력이 용서되던 시대였으니까요.

너무 괴로워 학교가 무너지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해가 뜨지 않는 암흑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비합리적인 권력 앞에 가장 약한 존재였던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대로 현실을 외면하며 견뎌왔습니다.



2. 매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보이지 않는 문신'

세월이 흘러 교실에서 매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더 지독한 것이 들어앉았습니다. 바로 ‘벌점’과 ‘학생부 기록’이라는 이름의 낙인입니다. 한 번 새겨지면 평생을 따라다닐 문신처럼, 어른들은 이제 매 대신 펜 끝으로 아이들의 인생을 흔듭니다.

과거의 선생님이 ‘하늘’이었다면, 지금의 선생님은 아이의 미래를 쥐고 흔드는 ‘심판관’이 된 것만 같습니다. 여전히 학생은 약자입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 글자 한 자에 아이의 인생 경로가 바뀌어버리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숨 막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또한, 남성 모델이 사라진 교육 현장에 대한 우려도 지울 수 없습니다. 여교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며 아이들이 균형 잡힌 성장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과거 남성 교사들이 휘두르던 물리적 폭력과 성추행이 끔찍했다면, 지금은 또 다른 의미의 불균형이 교실을 채우고 있습니다.


3. 당신의 '교권' 뒤에 숨겨진 아이의 '눈물'

몇 해전, 과학 시간에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위해 학교에 조심스레 보조 교사를 제안했습니다. 돌아온 답은 차가웠습니다. 나의 제안이 ‘교권 침해’라는 통보였습니다.

묻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을 보호하겠다는 그 높은 성벽 안에서, 지금 당장 무너지고 있는 내 아이의 인권은 누가 지켜주는 것인지. 학생의 아픔은 방치된 채, 자신들의 권위와 이익만을 보호하려는 모습에서 나는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최근 뉴스에 보도되는 교사 폭행 사건들을 보며 모두가 교권을 외칩니다. 물론 교사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폭행을 자행하기까지 그 아이가 겪었을 내면의 지옥, 그리고 그 뒤에 가려진 아픈 사정들은 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요.

4. 하얀 도화지에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색, ‘안전’

교실은 전쟁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의 권위가 더 높은지 겨루는 곳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곳은 아이와 선생님 모두가 ‘안전’하게 자신의 꿈을 채워가는 커다란 도화지여야 합니다.

마음이 아픈 아이 뒤에는 대개 마음이 병든 선생님과 부모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해 권력의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 ‘측은지심’으로 서로를 바라볼 순 없을까요.

부디 우리의 학교가, 아이들이 저마다의 색깔과 선으로 행복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공간이 되길 꿈꿔봅니다. 상처 입은 당신의 마음도, 그리고 불안에 떨고 있는 아이의 내일도,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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