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탠 된 창 너머, 당신의 최후변론을 듣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통해 본 이해와 연민의 기록

by지인


선탠 된 창 너머의 서사 :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고

오래된 드라마 한 편을 하루 만에 정주행 했다. 주인공 상연을 보며 처음엔 화가 났다. 은중을 이용하고, 은중의 사람을 탐내고, 늘 제멋대로인 그녀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 그녀가 자신의 인생이라는 판결문을 읽기 전 내뱉은 ‘최후변론’을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상연이라는 창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의 창 안은 캄캄했다. 엄마의 인정을 갈구했으나 늘 오빠에게 밀려났던 아이. 오빠의 죽음과 어머니의 병사,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오빠의 비밀까지. 상연은 평생을 누군가의 조각을 뺏어서라도 자신의 빈 곳을 채우려 발버둥 쳤지만, 성공의 정점에서 마주한 진실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망함이었다.

결국 그녀 곁에 남은 건 상처 입힌 친구 은중뿐이었다. 상연이 스위스로 가는 길에 은중을 불러낸 건, 죽음의 공포 때문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 순간에라도 ‘미안하다’는 진심을 전하고 싶었던 간절한 고백이었을 것이다.

햇빛 창가.jpeg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사람의 인생은 안에서는 밖이 훤히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짙은 선탠이 된 창과 같다. 우리는 살짝 비치는 실루엣만 보고 상대를 다 아는 양 말하고, 때로는 함부로 억측한다. 그 창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 멈춰 서기도 한다.


하지만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각자의 서사가 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벼랑 끝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의 진실이 맞닿았을 때뿐이다.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기 전 최후변론의 기회를 주듯, 우리도 타인의 삶에 대해 성급한 마침표를 찍기 전에 그가 걸어온 길을 잠시라도 바라봐 줄 수는 없을까.


비행기 안에서 은중의 손을 잡고 잠든 상연을 보며 생각한다. 이제는 그녀가 미안함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편안하기를. 그리고 그 서사를 함께 갈무리한 은중의 마음도 이제는 평안하기를.


더불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 또한 편안하기를 나직이 바라본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단종과 이선균, 그리고 어느 카페의 리뷰가 남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