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라는 이름의 성숙

인정 욕구와 '혼자의 시간'에 관하여

by지인

'인정'이라는 허기와 '홀로'라는 수분




한 달에 한 번, 나에게 허락된 온전한 자유시간. 어제의 저녁에 큰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인연을 맺은 엄마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토크 배틀이라도 벌어진 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수다 삼매경. 우리는 그간 쌓아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속사포처럼 풀어헤쳤다. 누구도 이기려 들지 않고, 오로지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리액션의 하모니'가 흐르는 자리. 그래서 이 모임은 늘 편안하고 즐겁다. 마음속 찌꺼기가 남지 않는 개운한 만남이다.


어제 나눈 대화 중 유독 내 마음을 흔든 건 '아빠', 즉 '남편'에 관한 이야기였다. 늦둥이 막내를 키우고 있는 한 엄마가 쓴웃음을 지으며 운을 뗐다.


"애들 아빠가 열 살 아들한테 자꾸 삐쳐요. 별것도 아닌 일에 서운해하고...

본인이 돈 벌어서 가족들이 이렇게 사는 건데, 그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그 순간, 우리 집의 풍경도 번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 역시 남편이 "나는 우리 집에서 서열 꼴찌인 것 같다" 며 소외감을 토로하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썼던 나만의 비바카라을 공유했다. 시장에 다녀오면 일부러 아이들 앞에서 생색을 낸다.


"이건 당신 위해서 산 거야. 아빠 거니까 건드리지 마."


그리고 남편의 눈을 보며 진심을 담아 말해준다.


"당신이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우리가 먹고살잖아. 우리 집에서 당신이 제일 첫 번째고, 가장 귀한 사람이야."


그렇게 계속 마음을 치켜세워 주었더니, 다행히 요즘은 서운해하는 기색이 조금은 가신 것 같다. 내 이야기에 엄마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기를 꺼냈던 엄마가 열 살짜리 아들이


"아빠는 꼭 애 같아"


라고 했다는 말에 또 한 번 공감의 폭소가 이어졌다. 아이조차 아빠의 단순한 서운함과 화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왜일까? 남자들은 무엇이 그토록 중요해서 서운함을 타는 걸까?


실제로 '남성의 인정 욕구와 부부 관계 만족도 간의 관계'를 다룬 한 연구 결과는 이러한 현상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남성의 인정 욕구가 높을수록 부부 관계 만족도는 오히려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집에서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발생하는 소외감과 서운함이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따로 있다.


'혼자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아는 남성은 부부 관계 만족도가 높다'는 결과다. 즉, 타인의 인정에만 목마르게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를 충전할 줄 아는 능력이 건강한 부부 관계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사랑받기를 원하고, 남자는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나 역시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기 전까지는 상대의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갈구했었다. 하지만 내 안의 자존감을 스스로 채우고 나니, 더 이상 사랑을 구걸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니 상대의 사랑도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의심도 사라졌다.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슬롯에서 받는 인정 욕구가 반드시 집에서까지 동일하게 채워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성숙은 그 결핍을 가족에게 요구하며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채워가는 과정에 있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그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갈등의 불씨가 줄어든다.


그래서 우리에겐 '혼자의 시간'이 절실하다. 부부라 할지라도 각자의 섬이 필요하다. 단 30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하루 중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시간. 그런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고갈되고 만다.


마치 식물에 물을 주듯, 완전히 말라버린 뒤에야 긴급하게 수분을 채우려 하지 말고, 조금씩 말라갈 때를 알아채고 적시에 공급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긴 시간 부대끼며 찾아낸 부부의 공식이다.


남남이 만나 한 이불을 덮고 산다는 것은 참 고된 일이다. 하지만 다투고 화해하고, 어느 순간 이해하고 인정하고 배려하며 한해 두 해를 견디는 것. 실을 엮듯 삶을 함께 짜내려 가는 그 과정 자체가 위대한 일이다.

각자가 바로 섰을 때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되고, 다시 각자의 시간을 잘 채울 때 서로를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으로 평생을 함께할 짝을 만나 오늘을 살아낼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한 밤이다.


"오늘 당신은 타인의 박수 없이도 스스로를 온전하게 사랑해 준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셨나요?

혹은 곁에 있는 배우자의 수고를 알아주는 짧은 한마디를 건네보셨나요?"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AI는 결코 모를 아이스크림의 시원한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