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이라는 가면을 쓴 폭력의 대물림을 끊어내기까지
2월 26일 밤, TV 화면 속에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진실이 흐르고 있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다룬 '용인 조카 물고문 사건'. 만 8세 샛별이가 겪었을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이의 식도에서 발견된 빠진 치아는 그 공포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가해자인 이모 역시 과거 가정폭력의 처절한 피해자였다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 '군산 아내 살인사건'의 생존자였던 그녀. 누구보다 폭력의 고통을 잘 알았을 그녀는 왜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의 괴물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녀는 무속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귀신을 쫓는다'는 명목으로 학대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것은 신앙도 훈육도 아닌, 그저 '악의 대물림'일뿐이었다.
폭력은 소외된 공간에서 더 쉽게 자행된다.
나 역시 돌아본다. 우리 세대는 종아리를 맞고,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무차별적인 매질을 견디며 자랐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매타작은 아이를 권력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부모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기준을 맞추지 못해 떨던 아이, 그러고 아이는 그것을 맞출 수가 없다. 아직도 어느 가정에서나 회초리가 아이의 몸에서 춤을 춘다. 성인이 되어 다시 자신의 화를 아이에게 쏟아붓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나부터는 멈추고 싶었다."
그 대물림을 끊기 위해 나는 공부했다. 화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내 아이에게만은 절대 매를 들지 않겠노라 맹세했다. 그러나 세상은 냉혹하고 육아는 고되다. 나 역시 어느 순간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내 스트레스를 아이의 등에 후려치듯 쏟아낸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너졌고, 아이에게 미안함으로 눈물지었다. 내가 받은 상처처럼 내 아이도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트라우마로 평생 그늘지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마주하며 기다림을 연습한다.
"자녀는 내게 온 손님이다. 귀하게 대접하라. 그리고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니 그때 보내주면 된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김붕년 선생님의 이 한마디가 내 마음의 울림이 되어 깊이 박혔다. 내게 온 귀한 손님을 함부로 대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노력하는 엄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내 아이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믿어주며, 사랑하는 엄마로 남고 싶다. 내 아이의 몸 위에서 회초리가 춤추는 대신, 따뜻한 온기가 흐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