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보이 J에게 누구랑 짝하고 싶냐고 물었다.
누구랑 짝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음...그럼 선생님이 숙제 내줄께~
내일까지 짝하고 싶은 사람 한 명 정해서 말해줘."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J를
좀 귀찮게 하고 싶었다.
우리반에 누가 있는지를 추려보고
그 중에 호, 불호를 선긋다보면
자신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드디어 약속된 내일이 되어 답을 달라고 재촉했다.
그랬더니 J는
"K랑 짝할래요."라고 했다.
??
"왜에?"
"다른 애들은 뒤에서 뒷담하는데요,
K는 앞에서 싫다고 하니까 더 나은 것 같아요."
아.......그렇구나......
숨막히는 두뇌싸움,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힘겨루기에 넌더리가 난듯해보였다.
K는 자폐 증상이 있는 도움반 친구이다.
도움반이란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이 필요한 교육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운영하는 학급을 말한다.
K는 아침에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교실에 들어온다. 조용한 가운데 벌컥 문을 열며 들어온다. 한치의 조심스러움도 없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큰 목소리로 유치원생처럼 손을 흔들며 외친다.
"안냐세여~!!!"
3월 초에 아침에 K를 만날때마다
그의 표정과 미소가
앉아있는 다른 아이들과 사뭇 대조적이어서 인상깊었다.
K는 함박 미소를 머금고 오늘 하루가 정말 신나고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위풍당당하게 들어선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이미 이른 아침부터 지친표정이다.
너무나 많은 부담에 짓눌려 보인다.
무엇보다 학원숙제에 파뭍혀 있고, 수시로 실시되는 수행평가에 집중해야 하며 각기 다른 선생님의 수업방식에 맞춰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한다.
어느 날은 교사가 수업 태도가 좋지 않은 학생을 나무라자, K는 큰 목소리로 교사를 나무랐다.
"샌세님, 왜 화가 났어요? 화 내면 안되요!!!"
"샌세님, 욕하면 안되죠! 욕 나쁜 거에요!"
유치원생들의 아름답고 고운 동심어린 단어들이 아니면 K에게는 욕으로 통칭된다.
앞 뒤 없는 돌직구, 솔직함에 어처구니가 없지만
다른 아이들은 K의 말들이 너무 통쾌해서 그 순간 K로 빙의되고 싶어 보였다.
우리는 많은 것을 포장하고 감추고 아닌 척하는 것이 슬롯화라고 믿고있다.
자신의 욕망을 적당히 감추는 것이 품격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차곡차곡 학교에서 슬롯화된 이후에 어른이 되면 어떤 것이 나를 감춘것인지,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 조차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겉과 속이 같게 투명해지는 것이 가능할까?
속마음을 드러낼만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칠 수 있다면 마음 속 고뇌가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