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날 막을 수 없어

by젼샘

찬찬한 걸음으로 오르막길을 걸었다.

매일 차로 오르던 길을 걸어서 가니 한결 여유로웠다.

그런데 매일 나를 노려보던 과속단속카메라가 보였다.

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참을 과속카메라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눈가의 독기를 스르륵 풀었다.

넌 이제 날 어쩌지 못하잖아. 음하하하하!!!!!!

이토록 사소하고 아무도 알 수 없는 지점에서

통쾌함을 느끼는 나의 소심하고 보잘것없는 행복 깜냥에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동안 당한 걸 생각하면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수도 없이 설치된 과속카메라 때문에

운전할 때마다 긴장해야 하고,

이동식 몰래카메라가 있을 수 있으니

아는 길도 네비를 켜고 운전하는 것이 속 편하다.

과속 카메라가 있는 지점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인지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고령의 아버지는 매일 다니는 길인데도 그놈에게 계속 당한다. 그래서 엄마한테 속도위반과태료 고지서를 심심치 않게 선물하는 것도 한몫했다.

주변을 둘레둘레 살피고 난 후

카메라를 바라보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메롱을 날렸다.

카메라 너머에는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과 딸들이 지켜보고 있겠지만 지금은 그들을 잠시 잊고 싶다.

죄송합니다....ㅎㅎ

이것은 나만의 소심한 복수다.

우리 엄마를 속상하게 한 죄!

늘 나를 주눅 들게 한 죄!

내일이면 브레이크를 밟으며 어쩔 수 없이 네 기색을 살피겠지만 오늘만큼은 넌 날 어쩔 수 없뜨아~~~!!!!

오늘의 이 짧은 갑질이 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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