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노란 땅콩 꽃이 피면 검정비닐을 찢어줘야 할 때가 온 겁니다.
'검정 비닐 찢는 일쯤이야, 일도 아닐테지'
얕잡아 보았습니다.
7월 장마철에는 가만히 밭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린다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제딴에는 단단히 채비를 한다고 모자에 마스크는 물론이고 모기 기피제까지 두루두루 준비를 하였거든요.
첫 해에는 달랑 한 고랑, 지난해에는 두어 고랑, 올해는 몇 고랑을 심었을까요?
그렇지요.
무려 세 고랑을 심었습니다.
점점 땅콩 욕심이 생겨나서 해마다 늘려온 탓입니다.
빗줄기가 사납게 쓸고 간 밭고랑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따가운 햇살과 비바람에 녹초가 된 비닐은 슬쩍 힘을 주어도 좌르륵 찢어져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엄마한테 확인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땅콩밭에서 빤히 보이는 마을회관에 엄마가 누워계신 걸 아는터라 잠깐 고민을 해봤습니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는 말이 있으니 엄마한테 확인을 받는 게 나을테지'
일손을 잠시 내려놓고 뚜벅뚜벅 큰 걸음으로 동네회관을 향하였습니다.
흙범벅이된 장화를 신고, 땀에 절은 몸으로 안으로 들어설 수는 없어서 문밖에서 냅다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 땅콩밭에 좀 와보셔요."
귀밝은 엄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드르륵 문이 열렸습니다.
"잉? 그려, 알것어."
엄마는 지팡이를 한 손에 짚고 기우뚱기우뚱 걸으셨습니다.
입으로 농사짓는 엄마와 함께 땅콩밭으로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디 말이여.
비닐을 찢구서 흙을 한덩이씩 얹어주야 햐."
그 말씀에 따라 촉촉한 흙이라 두 손으로 떡주무르듯이 한 움큼 욕심껏 집어 턱턱 땅콩줄기위에 놓았습니다.
"그랴, 그러믄 되는겨."
엄마는 비닐을 찢고, 흙을 얹는 모양새까지 살펴보고는 마음이 놓였는지 그대로 뒤돌아서 휘청휘청 회관으로 가셨습니다.
"저녁에 그 시간에 모시러 갈게요."
비척비척 걸어가는 엄마 모습이 눈에 밟혀 얼른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땅콩 한 고랑은 혼자서 할 만 하더군요.
나머지가 문제였고요.
그 사이 남편은 예초기로 고랑과 고랑 사이의 풀을 모조리 쳐냈습니다.
"흙을 이렇게 얹어야 하는 거네요."
남편은 등에 맨 예초기를 내려놓고, 땅콩 고랑으로 찾아와 나머지 두어고랑에서 밭일을 함께 마무리지었습니다.
"땅콩 캐는 것은 해마다 해봤지만, 흙을 얹는 일은 처음이네요."
남편의 말에 끄덕이면서 그만큼의 일이 여태껏 엄마 몫이었겠다 싶었습니다.
호미나 삽이 아니라 두 손으로 흙을 퍼내었으니 셔츠끝이 흙투성이였습니다.
어느 틈에 흙물이 들었는지 바락 바락 문질러 빨아도 쉬이 사라지지 않을 기세고요.
돌아올 즈음에야 옷소매를 바라보니 그꼴이 되고 말았더군요.
그제서야 땀범벅이 된 얼굴을 옷자락을 당겨 슥슥 닦았습니다.
거무튀튀한 흙속, 갓 맺히기 시작한 어린 땅콩이 씨알 굵게 여물어갈 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숨막힐 듯 밀려올 삼복더위속에서도 단단히 저를 채워갈 것을 믿으면서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