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어릴 적 동요중에
"채송화도 봉숭아도~"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어요.
어째서 코흘리개 시절의 노래 한 토막이 아직도 생생한 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바람결에 채송화씨앗이 날아왔는 지 감자밭 고랑 사이에 채송화가 빨갛게 피었습니다.
저희들끼리 으샤으샤 자라나고 꽃을 피우는 데 그 모습이 하도 끈질기면서도 신통하여 야멸차게 탁탁 호미로 캐낼 수 없습니다.
감자나 고구마같은 일용할 양식을 심는 밭을 순식간에 어여쁜 꽃밭을 만들어 놓는 채송화.
아무리 불러들인 적이 없다해도 아름다운 꽃잎을 넋놓고 바라보게 되것만.
어찌 오고가는 과정을 따지면서고운 채송화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랴.
감자를 모두 캐어내고 나니,
이젠 채송화꽃만 마치 제자리인 것처럼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본디 자리라는 것을 따로 있는 게 아닐 수 있지요.
그 자리에 머물러 뿌리를 내리고 영차영차 줄기를 뻗어내고 꽃과 열매을 키워내면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다보면 제 씨앗을 널리널리 흩뿌리는 계절까지 누리게 되는 것이고요.
이름없는 풀들이 세상에 살아남는 방법이 그러하듯이 작고 작은 채송화도 제 힘껏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하여 흙바닥에서 기껏 올라와봐야 바닥을 면치 못하여도 개의치않는 모습 또한 의연하여 멋지군요.
꼿꼿하게 꽃망울을 하늘을 향해 세우고 도도하게 피어나도 좋을텐데.
이파리부터 꽃잎까지 죄다 바닥에서 바닥까지 빗물처럼 흘러가는 자태가 지극히 겸손하지 않은가.
꽃 향기라도 한 번 맡을라 치면 채송화 앞에 쭈그려 앉아야 하니 절로 두 무릎을 굽혀야 하지요.
굽힌 두 무릎으로도 도무지 닿을 수 없어 흙바닥에 납작 엎드려 절하듯 수그려야 합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도도한 꽃을 영접하는 듯 아이러니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쪼그려 앉는 일이 별로 없는 세상,
채송화를 제대로 만나려면 아장아장 아기도, 생글생글 아가씨도 무덤덤한 아줌마 아저씨도 모두 모두 그 앞에 한줄로 앉아야 하거든요.
물론 위에서 멀뚱멀뚱 쳐다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고요.
우연히 마주친 발 아래 채송화를 보고도 무덤덤히 지나칠 사람도 더러더러 있겠습니다.
그사람의 눈에는 채송화 아니라 무엇을 들이대도 마찬가지일테지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은 우리의 얼굴처럼 제각각입니다.
우리곁에 머물러 있는 작은 아름다움은 셀수 없이 많습니다.
깊은 밤 저 하늘에 이름모를 별들처럼 하늘아래 꽃들은 날마다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거든요.
꽃은 꽃으로서 살아가려고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