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세요?"
웬만하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시원한데다 달콤하기까지 하니 사르르 녹나내리는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위로는 구순 아버지부터 십대 여드름 막내아이까지 아이스크림이라면 온 가족이 앞다퉈 냉큼 손을 내밀곤 합니다.
그야말로 마다하는 사람이 없는 셈입니다.
딱 한사람.
수수한 단맛을 즐기는 뼛속까지 촌스런 별난 사람 하나만 빼고요.
6월, 초여름입니다.
아침저녁에는 서늘하고 한낮에는 땡볕이니 여름은 여름이지요.
하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가족들 몫으로 냉동실에 구석구석 쟁여놓았습니다.
동네에 작은 편의점 한 곳 없다보니 먹거리를 미리미리 챙겨야 하거든요.
반찬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이런저런 간식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며칠전에 , 엄마에게는 막대기 아이스크림 그 자체로, 아버지에겐 자그만 그릇에 아이스크림을 과일자르듯이 똑똑 한입크기로 잘라드렸습니다.
손힘이 부쩍 없으신 아버지,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그냥 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요.
두 분이 코흘리개 아이처럼 냠냠 쩝쩝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에 홀딱 빠져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수저로 그릇 바닥까지 싹싹 긁어내기까지 하였고요.
엄마도 그에 질세라 빈 나무 막대기를 쥐고는 혀를 쭉 내밀고는 이리저리 야무지게 핥았습니다.
'저렇게 맛있을까?'
부모님이 처음 잡수시는 것처럼 정신을 쏙 빼고 잡수시니 저도 모르게 빙긋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후에 무슨 일이 닥칠 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고요.
그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정어정 아버지가 안방으로 걸어가시는 데,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만 아버지의 바지에 시선이 딱 꽂혀버렸습니다.
회색빛 바지 허벅지 뒤쪽으로 거무죽죽한 자국이 띄엄띄엄 두어개.
비척비척 걸어들어가는 아버지를 그 자리에서 당장 붙잡아 둘 수 없어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무엇인지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 똥이 묻었구나.'
여태 이런 일이 드문 편이셨지만 치매를 앓는 아버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살살 쓸어내렸습니다.
'어쩌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아버지의 속옷과 바지를 벗겨드려야 할 것 같아서 옷장을 드르륵 열고 마땅한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겼습니다.
그 사이에 남편에게 아버지 옷을 함께 갈아입혀드리자면서 이차저차 귀뜸을 하였고요.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남편은 지난번에도 아버지의 실수를 내색하지 않고 수습해준 사람답게 대수롭지 않은 낯빛으로 들어주었습니다.
"장인어른 바지부터 갈아입혀 드려야겠네요."
남편과 둘이 옷가지를 챙겨들고 아버지가 누워계신 안방에 들어갔습니다.
가까이에서 아버지의 바지를 갈아입혀드리려고 무릎을 딱 꿇고 앉았는데,
"앗! 아니네요."
똥인 줄 알았더니 다름아닌 초콜릿 덩어리였던 것입니다.
어제 잡수신 초콜릿이 주르르 흘러 바지의 얼룩으로 남은 걸 잘못 본 것이었습니다.
기왕에 들고 온 터라 새 바지로 갈아입혀드리면서 그제서야 맑은 하늘처럼 속이 개운하였습니다.
목구멍까지 스물스물 차오르던 한숨이 씻은듯이 사라져버렸거든요.
구순의 치매아버지.
화장실 실수를 하지 않으시는 것 만으로도 양 어깨가 가벼워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어서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