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포기하자 ( feat 고추이파리)

토편지

by심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5월 18일 고추모종 여린잎을 싹뚝 잘라먹어버린 고라니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그로부터 십여일이 지나갔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통째로 사라진 고추모종을 보면서 어찌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하루하루 곁가지에서 새로운 싹이 올라왔습니다.

'괜찮아, 없으면 없는대로 새로이 살아갈 수 있어'

온 몸으로 보여주듯이 씩씩하게 여린 이파리가 뾰족뾰족 솟아났습니다.

사람처럼 결코 도둑맞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더군요.

image.png허망한 예전 모습


전의 모습과 견주어도 이제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만큼 겉모양까지도 닮았습니다.

그야말로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일이었다는 것이지요.

포기를 포기하라는 뜻이겠지요.

아무것도 섣불리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밀어올려보라는 자연의 소리가 아닐런지요.

포기는 김장철에 배추 포기나 셀 때 쓰면 되고요.

여리디 여린 고추모종은 이미 그 작은 몸뚱아리에 생명의 끈을 끈질기게 붙들어 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난데없는 일을 당하더라도 뿌리채 흔들리거나 단박에 주저앉아 포기하는 법을 모르는 채로요.


image.png새 이파리 뻗은 고추☆


농사를 지으며 글자너머 삶을 밭학교에서 배웁니다.

말없이 가르침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최고의 선생님은 바로 자연이니까요.

풀 한포기, 고추 한포기도 그냥저냥 살지는 않는다는 것을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여기저기 실핏줄 터져가면서 고단한 과정을 무릅쓰고 안간힘으로 뿌리를 내립니다.

그 사이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끝내 옹골진 열매를 맺지 않는가 말입니다.


성급하게 실망하고 자신을 닥달해서 무엇하랴.

시간은 앞으로만 흘러가는 것.

무엇이 어찌되었든 한번 지나간 강물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하여 자기자신을 몰아세우고 바카라망으로 헛되이 시간을 버리기도 진정코 아까운 일입니다.

(고라니 망을 일찌감치 씌워놓았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곱씹어봐도 소용없듯이)

실은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안해본 것이 아니라서요.

그럼에도 어제는 그저 지나간 오늘에 불과합니다.

결국 어떤 일이 다가와도 우리에게는 오늘만이 오롯합니다.

고라니에게 못된 짓을 당하고도 거뜬히 새 이파리를 처음처럼 싱그럽게 피워내는 고추모종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고추모종의 볼수록 기특한 모습에 두고두고 기쁨의 미소를 저도 모르게 짓습니다.

으라차차!

지금 이대로 부쩍부쩍 키를 키우고 이파리를 무성하게 뻗어가다보면 하이얀 고추꽃을 만날 수 있겠지요.

고추꽃이 떨어져나간 자리마다 영락없이 자그만 고추가 점차 매달려 자랄테고요.

다닥다닥하여 한 움큼 가득히 따내어도 줄어들었는 지 도무지 눈대중으로 알 수 없는 고추농사였으면 좋으련만.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



image.png그대와 나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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