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를 짚어도 괜찮아
(feat 여든여덟 엄마)

토편지

by심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이미 수년전에 엄마는 디스크 진단을 받았습니다.

연세가 워낙에 많으시니 병원에서도 통증치료만 받고 계십니다.

젊은 사람처럼 적극적으로 병의 원인을 제거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지요.

와르르 어긋나고 와장창 내려앉은 디스크.

발병 첫 해에는 침대에서 윗몸을 일으키는 일도 벅차하더니만 병원치료를 받으시면서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이어가실 수 있었습니다.

간혹 통증이 심할 때만 병원에 다니시면서요.

그러다가 열흘 전 아침이었습니다.

"아야! 다리에 힘을 줄 수가 읇어 큰일낫구만."

새벽잠이 없는 엄마, 눈 뜨면 텃밭으로 나가시는 게 습관이었건만 다리를 반듯하게 세워 걸을 수가 없게 되셨습니다.

딱히 넘어졌다든가 어디에 부딪쳐서 상처를 입으셨다고 하면 그럴 듯할 법한데 전혀 그런 일조차 없었거든요.

비척비척 쓰러질 듯 걸어다니는 폼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서 여간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엄마, 아버지가 쓰시는 지팡이가 여러 개니까 그 중에 하나를 가져다 드릴테니 한번 짚어보셔요."

엄마는 고맙게도 여든여덟살이 되도록 지팡이를 짚지 않고 살아오셨습니다.

엄마의 떨떠름한 낯빛을 슬쩍 보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시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었습니다.

"여든 여덟살에 지팡이를 짚는 게 뭐 어때요?

아버지처럼 보행보조기를 끌고 사는 노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image.png산철쭉☆


아버지의 대여섯개의 지팡이 중에 튼튼해 뵈는 것을 골라두었습니다.

지팡이가 안전하게 엄마의 무게를 지탱해주기를 바라면서요.

혹시나 싶어서 선 자리에서 '껑충'

매달리듯 지팡이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보았습니다.

"이렇게 해봐도 끄덕없는 걸 보니 안전해요."

안전사고는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서 더욱 세심하게 엄마의 지팡이를 고를 수 밖에 없었어요.

"잉, 괜찮을라나 모르것네."


image.png


지팡이를 엄마의 한 손에 냉큼 쥐어드렸습니다.

엄마는 잠깐 망설이다가 지팡이를 짚고 어설프게나마 거실에서 부엌으로 한걸음을 떼셨습니다.

"으메 지팽이를 짚으니께 힘이 덜 드는구만."

먹장구름이 꽉 들어찬 엄마의 낯빛에 가느다란 햇살 한줄기가 비추는 듯 했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다녀보셔요."

노인들의 낙상사고는 치명적인 것입니다.

한번 넘어지기라도 할라치면 엉성한 뼈가 어찌 남아나겠는가.

"엄마, 모양새같은 것은 신경쓰지마셔요.

엄마 연세에는 넘어지면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이잖아요."

며칠전까지 멀쩡히 걸을 수 있었으니 엄마가 속으론 지팡이가 마땅찮게 여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여 주절주절 위로삼아 당부의 말을 주르르 늘어놓았습니다..

하루 아침새에 노인의 건강을 뒤바뀔 수 있더군요.

마을회관 마실도 엄마 당신발로는 가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토바이에 엄마를 태워서 올적갈적 모셔오고 있습니다.

"아이야! 맨날 이르키 살믄 워뜩하지?"

엄마는 불쑥불쑥 겁이나는 모양이십니다.

"괜찮아지실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셔요.

통증의학과에서 차차 좋아진다고 하니까요."

처음 디스크 진단을 받을 때도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워하셨는데 시간따라 좋아지셨으니

이번에도 믿어보려합니다.

다른 방법도 달리 없고요.

아버지는 보행보조기를 밀면서, 엄마는 지팡이를 짚으면서 구순에 여든여덟을 이내 살아냅니다.

세월의 탓해 무엇하랴.

백세가 저만치 와있으니 만큼 어찌 병이 없기를 바라겠는가.

그 연세에 부모님이 집에서 지내실 수만 있어도 행운입니다.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


image.png그대와 나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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