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하루라도 더 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니?"
몇 년 전, 암 진단을 받은 언니의 말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5년 완치판정을 기다리는 형편이라 아무런 보험도 들 수 없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요.
"쉰 넘어 환갑즈음에 암을 겪고나니까, 한편으론 사는 게 지겨웠던 날이 있었는데 내가 언제냐 하는 것처럼 절절해지더라."
다행스럽게도 언니의 경우는 암 초기.
항암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인터라 가족들, 특히 부모님에게 쉬쉬 자신의 병을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짐작컨대 언니는 5년 완치 판정을 받고나서야 제 사정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을 모양입니다)
벚꽃은 일주일, 대략 열흘이면 후루루 바람결에 꽃잎을 떨구어 버리고 말지요.
텃밭 귀퉁이에 심어놓은 연산홍이 울긋불긋 피어나는 때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고맙게도 고운 꽃을 피워주니 덕분에 눈호강이 푸짐하지요.
몇 송이 가지를 똑똑 따서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아버지께 보여드려야겠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마당까지 나오시려면 날짜를 잡아야 하거든요.
지팡이만 들고 가붓하게 나오실 수만 있어도 참 좋을텐데.
연산홍.
길거리 가로수로 볼 수 있을 만큼 흔하디 흔한 꽃입니다.
꽃집에서 농부의 손길로 한송이 한송이 땀과 정성으로 키워낸 꽃도 아니고요.
말하자면 민들레꽃, 진달래꽃, 개나리처럼 바람이 키워주고 햇살이 등을 밀어줘 만나는 들판의 꽃입니다.
그럼에도 꽃집의 고고한 꽃에 견주어 봐도 아름답기로는 티끌만치도 밀리지 않고요.
아름다운 4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꽃잔치가 아니더군요.
제 아버지처럼 연로한 노인들은 집밖이 천리길이라 제대로 붉은 꽃이파리 하나조차 바라다 보지 못하십니다.
긴긴 겨울을 지나면서 봄을 기다리는 이유중의 하나가 눈길 닿는 곳마다 봄꽃들이 차례차례 피어나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이름난 곳의 꽃 축제는 말할 것도 아니거와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거기 꽃들이 다복다복 피어있더군요.
4월 하순, 연산홍의 계절입니다.
이리저리 꽃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꽃을 즐길 수 있습니다.
출근길, 등교길 하다못해 동네 한바퀴 산바카라길에도 공원 언저리에 연산홍 꽃무더기를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내것이 아니면 어떠랴.
붉은 연산홍의 꽃말은 첫사랑, 사랑의 기쁨, 졍열이라니
꽃말에 우리가 품는 봄날의 희망이 깃들어있습니다.
꽃을 바라보고 그 감흥에 취할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순간에 꽃의 친구이자 주인노릇을 톡톡히 하는 것이겠지요.
아마도 연산홍은 제 아름다움에 한껏 취할 줄 아는 눈밝은 이를 반겨줄 테니까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