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상상을 하지 않고 살았어요.
코흘리개 시절에는 엉뚱한 생각으로 하루가 바빴는 데 말이에요.
집 뒤 커다란 바위위에 냉큼 올라가서 수많은 나무들을 관객삼아 박자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노래자랑을 실컷 열기도 하였답니다.
그 때 무슨 노래를 불렀는 지는 제목은 생각나지 않아요.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이렇게 시작하는 동요였는데…)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저 신이나서 깔깔 웃었던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저 멀리 떠다니는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그 위에 풀썩 올라타서 어디론가 바람따라 날아가고 싶었습니다.
궁금하고 궁금한 이야기는 조그만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있었어요.
대강 이런 식으로요.
강아지처럼 네 발로 걸을 수는 없나?
왜 어른들은 맨날 돈 이야기만 하나?
참새는 왜 케물어도 대답이 없나?
나무도 풀도 꽃들도 지나가는 개미도 왜그리 바쁜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사람은 왜 날개가 없는 것일까?
사람은 두 발로 걸어다녀야 하나?
사람은 왜 일을 해야 하지
사람은 왜 밥을 먹고 살아야 하지?
그야말로 보이는 것마다 의문투성이였답니다.
별의별 생각이 끝도 없이 펼쳐쳤으니까요.
물론 입을 열어 부모님에게 물어본 적은 없었드랬습니다.
밤낮없이 논으로 밭으로 달려가는 농사꾼, 부모님의 옷자락을 붙잡아봐야 혼구멍만 날 것을 알았거든요.
"핵교 숙제는 다 해놓은겨?
젊고 먹고 살기 바쁜 부모님에게 물어봤자 요런 잔소리만 들었을 테고요.
세상에, 나만 답없는 상상을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군요.
바카라.
바카라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숨어있었습니다.
인어공주가 왕자님을 사랑해서 물거품이 되었다는 거예요.
소공녀는 아빠를 잃어버렸고, 80일간 세계일주도 할 수 있고, 해저2만리 바닷속을 모험을 떠날 수도 있고요.
파트라슈는 송아지만큼 믿음직한 커다란 개, 네로네 할아버지는 기어코 세상을 떠나야만 하였습니다.
엉뚱한 생각이 당당히 글로 묶여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낮에도 눈을 뜨고 꿈을 꿀 수 있었어요.
저 멀리 어딘가 다른 세상을 그리는 맛에 빠졌거든요.
바카라을 펴면 언제 어디에 있는 지 훌쩍 떠날 수 있었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만드는 매혹적인 이야기의 힘에 이끌려 울고 웃으면서 말입니다.
반 백살에 글쓰기를 하면서 상상의 힘을 다시 불러보아요.
이미 지난 까마득한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어요.
그럼에도 머릿속에 말라붙은 생각의 우물을 다시 파보는 일은 지금도 해 볼 수 있잖아요.
해봐야 알 수 있는 일에 어찌 경계가 있으랴.
어디선가 궁금증 많았던 그 시절 그 아이가 쪼그려 앉아있다가
"왜 이제 와?"
부디 반갑게 맞아주면 좋을텐데.
4월, 아름다운 봄이 우리곁에 돌아왔듯이 상상의 힘을 그려봅니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부르지 않아도 제멋대로 집안을 휘돌아 다닙니다.
그와 같이 상상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은 어쩌면 닫힌 적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정작 제대로 두드려 보지 않았거나 혹은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이 아닐런지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