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야기
꽃구경을 나서기 좋은 시절입니다.
베란다 창밖으로 빤히 보이는 둑길에 벚꽃 가로수, 눈부시게 피었습니다.
하지만 뇌졸중파킨슨치매를 한 몸에 지닌 구순의 아버지에게는 머나먼 길입니다.
흔한 하루가 없듯이 흔한 봄날도 없지 않을까.
솜씨좋은 남편이 브레이크까지 손을 본 휠체어.
아버지의 봄 나들이를 위해 서너달동안 창고안에 고이고이 잠들어 있었답니다.
"점심 잡수시고 꽃 구경 나가요."
귀 어두운 아버지께 큰 소리를 지르면서 슬그머니 아버지의 눈치를 살펴보았드랬습니다.
혹시 예상치 못하게 절래절래 마다하시면 어쩔까 싶어서요.
(병을 앓고나서부터 부쩍 달라지신 아버지, 무엇을 예상해도 빗나가기 일쑤거든요)
"그려~."
흔쾌히 응답을 하시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남편의 휴무일에 화창한 날씨까지 도와주는 날, 귀하디 귀한 날이었습니다.
"햇살이 따가울 것 같아요.
아버지 모자 씌워 드려야겠어요."
흘깃 보아도 햇살이 반짝반짝 눈이 부셨거든요.
그 사이에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냉큼 챙겨 쓴 남편이 발빠르게 움직여 주었습니다.
어느새 현관 앞에 휠체어를 떡하니 가져다주었고요.
"휠체어에 브레이크 걸어주어요.
설렁설렁 움직이는지 체크해보고요."
남편이 휠체어 뒤에 가만히 서서 느릿느릿한 아버지의 발걸음을 함께 기다려주었습니다.
현관앞까지 어찌어찌 부축하여 모시고 온 아버지, 세 칸짜리 계단이 마지막 고비로 남았습니다.
"저기 저 휠체어까지만 가시면 되어요."
아버지는 휠체어와 남편을 번갈아 보시면서 소풍가는 아이처럼 무척이나 반기셨습니다.
문밖 출입을 버거워하는 줄 이미 환히 알고 있었고요.
"지팡이를 짚으셔요."
아버지는 한 손에 지팡이를, 다른 한손은 내 팔에 기대어 한 발 한발 발을 힘겹게 떼셨습니다.
"하나, 두~울, 세~엣"
어렵사리 계단을 지나, 휠체어에 몸을 실은 아버지, 두 발을 발판에 올리는 일이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부리나케 휠체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버지의 발을 들어서 한 쪽씩 발판에 얹어두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얼마만에 꽃구경인 지 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떠셔요? 괜찮으시지요?"
아버지가 밝은 햇살아래에서 어지럼증을 느끼시지는 않은 가 첫 발을 떼기 전에 확인에 확인을 거쳤습니다.
끄떡이는 아버지의 모습에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혼자서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모실 깜냥이 없어 남편의 휴무일을 기다려온 것 길이 제법 길었습니다.
꽃이 어여쁜가 싶으면 비소식이 들리고 날씨가 좋은 가 싶으면 남편이 도통 짬이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혼자서 무턱대고 휠체어를 끌고 아버지와 산바카라을 나오기엔 벅찰 게 뻔하였으니까요.
언니, 오빠들, 하다못해 엄마까지 혼자서는 휠체어에 아버지를 모시고 나오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습니다.
"당최 너 혼자서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모시고 다녀올 생각 마라.
집앞 과수원 진입로가 얼마나 가파른데, 네 힘만으로는 어림없어."
하긴 그 진입로의 가파른 경사에 뭣 모르는 자동차 운전자는 벌벌 대는 경우도 있으니 결코 헛말이 아니었습니다.
"걱정마요. 꼭 셋이서 갈게요."
그렇게 가족들의 염려를 뒤로 하고 모처럼 나온 봄꽃 나들이였습니다.
"이제 출발해도 될 것 같아요.
내가 휠체어를 잡을게요."
사람좋은 남편은 휠체어 손잡이를 꼬옥 붙잡고 들은 척도 하지않고 씩씩하게 걸었습니다.
"천천히 가요. 아버지 이리저리 구경하시게요."
종종걸음을 치면서 남편이 끄는 휠체어 옆에 바짝 붙어 걸었습니다.
너른 마당을 지나 위험코스, 과수원 진입로 가파른 길을 앞두었습니다.
게다가 콘크리트 도로 포장이 부서져 내려 몇 센티 가량의 턱이 생겨버렸더군요.
평지와 달리 남편 혼자 힘으로는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어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자, 이제 한 쪽씩 잡고 힘을 써봐요."
남편과 둘이서 휠체어를 있는 힘껏 밀어올렸습니다.
겨울이면 눈썰매를 재미나게 탈 정도로 가파른 경사를 자랑하는 길답게 어지간한 힘으로 올라설 수가 없었겠다 싶었습니다.
주르르 힘겹게 굴러가는 휠체어의 바퀴소리에 더욱 남은 기운을 모조리 쥐어짜서 마침내 둑길 벚꽃 가로수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남편 혼자서도 벅찬노릇인데 하물며 내 힘으론 어림없겠구나'
그야말로 빈말을 장난삼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길이었습니다.
위에 사진에 올려놓은 것같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아버지의 나들이를 환영해주었습니다.
때맞춰 시원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모자밑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시원하게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와! 저 바람에 벚꽃 이파리 날아가는 것 좀 봐요.
아버지, 보이셔요?"
아버지와 셋이서 보이지 않는 핑크빛 신호등에 붙잡힌 것처럼 한참을 벚꽃 가로수길을 멈춰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봄바람이 벚꽃잎을 흔들어주면서 핑크빛 이파리가 살랑살랑 아름다운 춤을 췄거든요.
아버지가 그 순간, 축 쳐진 눈꺼풀 밑으로 쪼르르 흐르는 눈물을 손끝으로 훔치는 데 차마 보아도 보았다는 티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정작 아무말씀이 없으신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봄은 이렇게 아름답기만 한데 어쩌자고 아름답기만 한지요.
진심에 진심으로.
앞으로 몇 번의 봄을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래서
항상 한번 뿐인 봄 날,
그 하루
- 심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