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이라는 이름의 가불

I후불제 인생I

by기안


나는 성실한 장사꾼을 떠올려 보았다.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아도, 매일 힘겨운 노동의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새벽하늘을 열고, 제 몫을 다한 어두운 밤에 잠자리에 드는 생존 현장의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남들이 쉬는 날에도 마음의 계산기를 두드렸다. 손해 보지 않으려면 늘 썩은 과일과 새 과일을 생각해야만 했다.

단지 마음에 품은 꿈은 열심히 살면 먹고 남을 게 있다는 신념이었다. 정말 이 장사가 이익이 나는지, 이 노동의 끝엔 무엇이 남는지. 그저 열심히 살자는 매몰된 의지 하나로 모든 의문을 덮어두었다. 시간은 꼬박꼬박 아껴서 썼다. 체력도 감정도 아낌없이, 삶의 뒤편으로 던져놓았다. 장사는 성실해야 한다는 하나의 신념이 삶을 송두리째 덮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매일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장부를 들여다보면 크게 남는 것이 없었다. 통장에 쌓이는 것은 비슷했고, 마음은 점점 헐어가고 있었다. 겨우 수지균형을 맞추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고단한 생활 현장이었다. 기쁨은 마모되었고, 취향은 재고 정리하듯 헐값에 넘겨졌다.

바쁜 대목을 맞아 하루를 통째로 썼는데도 남는 게 많지 않았다. 무급(無給)의 피로만 이자로 쌓였다. 투입은 계속되고 있는데, 기대한 만큼 회수가 없는 구조였다. 잘못된 장사를 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나도, 그 자리를 쉽게 박차고 떠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때에, 다시 장부를 펼쳐보았다. 무엇을 벌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려는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잃어버린 잠, 잃어버린 관계, 잃어버린 나 자신이 떠올랐다. 그렇게 스스로의 삶을 가장 싼 값에 팔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열심히 살아도 남는 게 없는 장사는, 삶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였다. 스스로를 헐값에 매물로 내놓는 하루하루의 성실은, 결국 자신을 파산시킨다는 것을.

삶은 과일 장사와도 많이 닮아 있었다. 제대로 남기지 못하는 성실은 언젠가 파산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진짜 잘되는 장사는, 무작정 나를 소모하지 않고도 계속 열어 놓을 수 있는 하루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겨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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