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나와, 남이 바라보는 나 사이에서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살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내 선택을 설명할 때도 그렇고,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시키고 싶을 때도 그렇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어.”
“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말을 하고 나면 조금 편해진다. 적어도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은 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설명을 충분히 했다고 해서 상대가 나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할 수 있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선택을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이 정도 설명했으면 알아줄 만도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해받고 싶은 걸까, 납득받고 싶은 것일까.
왜 그렇게 했는지 알아주기를 바라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말처럼 세상이 흘러간다면 참 좋을 텐데 살다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힘든 순간도 있고,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선택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퇴사라는 결과로 보이는 일이 사실은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일 수도 있고,
‘왜 저렇게까지 하지?’ 싶은 행동이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내린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그 과정의 전부가 아니다.
대부분은 결과만 보이기 때문에, 남에게 설명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마치 내 행동에 자막을 달듯이 하나씩 설명한다.
그런데 아무리 설명해도 상대가 납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된다. 납득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설명하는 것까지다.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상대의 몫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오해하고 있다고 느끼면 계속 설명하고 싶어진다.
왜 그렇게까지 설명하게 될까?
아마도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은 이유는 단순히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해서가 아닐 것이다.
내가 한 행동 하나만으로 나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선택을 했다는 사실보다 그 선택을 하기까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봐줬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설명을 길게 만든다. 그런데 슬롯생활을 하다 보면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배우고,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라고 하고, 네 인생이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회사에서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내가 알고 있어도, 인사고과를 작성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오래 고민했는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견뎌왔는지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최종적인 평가는 다른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승진도 마찬가지다.
나는 스스로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직에서는 다른 기준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나는 다를 수 있다.
조금 억울할 때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타인의 평가가 존재하지 않는 슬롯 역시 이상할 것이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만 판단하면 어떤 조직도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울 테니까.
모두가 스스로를 좋은 사람, 성실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평가를 피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그 평가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그 사이에 자기 평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기 평가라는 것도 정말 객관적인 판단일까. 어쩌면 자기 평가는 나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수단이라기보다, 나 자신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낮은 평가를 받았을 때,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그 평가 하나가 나의 전부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했어.’라고.
이런 자기 평가는 때로는 나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타인의 평가 하나가 나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일종의 완충장치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 스스로를 좋게 평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낸 것은 아니고, 내가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자기 평가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믿어야 하지만,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필요하다.
‘나는 잘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혹시 내가 놓친 게 있을까?’라고 묻는 것.
둘 중 하나만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자기 평가가 너무 약하면 타인의 말 한마디에 쉽게 흔들리고, 반대로 자기 평가가 너무 강하면 다른 사람의 말에서 배울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그 사이를 오간다.
누군가의 평가에 속상해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내가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생각해 본다. 어떤 부분은 인정하고, 어떤 부분은 억울해한다. 그리고 결국 다시 나를 평가한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른 다음 다시 살아가고,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평가받고, 또 스스로를 평가한다. 이해받고 싶어 하고, 납득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상대가 이해하지 않을 수 있고,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평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설명하고, 노력하고, 보여주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그저 그뿐이다. 그 이상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내 선택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과정을 함부로 지워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는 알고 있는 많은 이유가 있고, 전부 설명한다고 해서 상대가 반드시 납득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이유가 사라지는 건 또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낮게 평가했다고 해서 내가 그 평가만큼의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내가 나를 높게 평가한다고 해서 그 평가가 곧 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를 믿는 법과 의심하는 법을 동시에 배워야 한다. 남의 평가는 통제할 수 없고, 나에 대한 평가를 내가 전부 결정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말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설명하면서 살아가고, 평가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는 이해받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 나를 납득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데까지 설명하고, 그다음은 상대의 몫으로 남겨두는 법을 배우는 것도 하나의 배움이나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를 알고 있다. 내가 잘한 것도 알고, 부족했던 것도 안다.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받아들이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본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믿고, 나아가기 위해 나를 의심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다른 사람의 시선과 내 마음 사이에서 살아간다.
이해받고 싶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나를 완벽하게 알아달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나까지 함부로 판단하지는 말아 달라는 스스로의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