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온전히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 뿐이다.
니체의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그것을 판단하는 태도다. 슬롯가 옳다고 말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반드시 나에게도 옳은 것은 아니다. 타인의 기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한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반드시 그에 맞춰야 할 이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기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여러 가지 기대를 건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친절하기를 바라고, 동료가 유능하기를 바라며, 가족과 친구들이 잘되기를 바란다. 이런 기대는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기대가 그렇지는 않다. 경쟁자가 자신보다 못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거래 상대가 순진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받아들이기를 바라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만만하기를 기대하는 경우도 있다. 타인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그 사람 자체의 가치보다는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타인의 기대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상대가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언제나 나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내가 성공하기를 바라면서도 자신보다 앞서 나가지는 않기를 바랄 수 있고, 누군가는 내가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순간에는 단호하게 행동하지 않기를 바랄 수 있다. 상대가 나에게 바라는 모습과 내가 살아가고 싶은 모습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 차이를 살피지 않고 기대에 부응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어느 순간 나 자신의 판단보다 타인의 만족을 우선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타인의 기대를 모두 경계하거나 거부할 필요는 없다. 서로에게 이로운 기대라면 오히려 관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누군가 나를 믿고 유능한 사람으로 대한다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성장할 수도 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다른 사람이 먼저 발견해 줄 수도 있고, 그들의 기대가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동기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대를 받느냐 거부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대가 나와 상대 모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판단하는 일이다.
나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과 타인의 기대에 끌려가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기대가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 그에 맞춰 행동한다면, 그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 된다. 반대로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접고 기대에 맞추려 한다면, 자신의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똑같이 상대의 기대를 충족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자신의 판단이 있었는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타인의 기대를 자신의 목표로 받아들이는 것과, 타인의 기대를 자신의 목표로 착각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타인의 기대는 그 자체로 따라야 할 명령도, 무조건 거부해야 할 억압도 아니다. 그것은 내가 검토하고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제안이다.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상대와의 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나에게 해가 되거나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다면 거절할 수도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하는 삶을 살더라도, 그 기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사람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지 말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바람을 존중하면서도, 내 삶을 결정할 권리까지 내어주지는 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