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판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니체는 인간이 주어진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 슬롯가 바람직하다고 정한 것들이 반드시 나에게도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슬롯의 모든 기준을 거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을 누가 만들었느냐보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타인의 시선에 따라 살아가는 것과 타인의 시선을 참고하여 스스로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나는 되도록 자유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온전히 내 판단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반응하고, 내 평판을 신경 쓰며, 대화 중에 누군가의 말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타인의 시선은 내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슬롯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그런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살펴볼 수는 있지만, 그 평가가 옳은지 판단하는 과정까지 맡겨서는 안 된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기준으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듣고 생각을 바꾸더라도 그것이 스스로 내린 판단이라면 주체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평가를 무조건 따르기만 한다면, 아무리 좋은 결과를 얻더라도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자신의 판단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가 모르는 영역이 있을 수 있고, 내 판단이 언제나 정확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내가 충분히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는 전문가나 다수의 판단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내 생각보다 타당하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자신의 기준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준보다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판단을 믿되, 그 판단이 틀릴 가능성까지 인정하는 일이다.
지금의 나 역시 슬롯의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슬롯적으로 좋은 직업을 가졌고, 필요한 만큼 돈을 벌고 있으며, 성격과 외모도 나름대로 가꾸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모습이 타인의 시선에 굴복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슬롯가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 중에는 나에게도 실제로 좋은 것들이 있다. 굳이 다른 사람들과 반대되는 선택을 해야만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런 삶을 선택한 이유를 이해하고 있고, 그 기준이 나에게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과 판단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중요한 것은 그 영향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지 결정할 권리를 자신에게 남겨 두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내게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이고, 내 삶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면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도 자신의 판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