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잡은 실, 첫 코의 용기

쉰 넘어 시작한 글쓰기, 서툰 한 문장이 나를 일으켰다

by쉼표JEONGSEON


오늘 아침 스레드 마실에서 뜨개질하는 여인의 그림을 만났다. 햇살 드는 창가, 곁에 몸을 말고 누운 고양이, 무릎 위의 털실 한 뭉치. 그 아래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지금 시작해서 언제 잘할까.
이 나이에 배워서 어디에 쓸까.


나는 그 두 줄 앞에서 한참 멈췄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었다. 내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계산부터 하던 손


살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너무 많은 계산을 하는 것 같다.


jay 님의 이 문장을 읽다가 웃음이 났다. 내가 딱 그랬다.

어릴 적 나는 바카라에서 좋은 글귀를 만나면 메모장에 옮겨 적곤 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써 보고 싶다고.


그 "언젠가"가 오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베트남 공장에서 하루를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던 밤, 나는 한 줄을 쓰기도 전에 계산부터 했다. 쉰이 넘어 글을 배워서 어디에 쓰나.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지금 시작해서 언제 잘하나.


계산은 언제나 같은 답을 내놓았다. 하지 마.


느슨한 코, 팽팽한 코

jay 님은 뜨개질을 처음 하면 똑같이 떴는데도 어떤 코는 느슨하고 어떤 코는 너무 팽팽하다고 했다. 내 첫 글들이 꼭 그랬다. 어떤 문장은 헐렁해서 마음이 다 새어 나갔고, 어떤 문장은 너무 조여서 읽는 사람이 숨이 막혔다. 몇 줄 쓰다 지우고, 다시 처음부터.


온라인카지노 작가 신청은 몇 번이나 문 앞에서 돌아섰다. 그만둘까 싶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만두지 못했다.


한 코씩 늘어 가는 재미

jay 님 말처럼, 아직 모양도 안 됐는데 한 코씩 늘어 가는 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공장 담벼락에 핀 보라 꽃을 보고 엄마와 동네 아낙네들의 수다를 쓴 날, 나는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수요일 저녁마다 시 한 편을 놓아두는 작은 시집의 첫 페이지까지 열었다.

잘해서가 아니었다. 좋아서였다. jay 님의 문장을 빌리면 이렇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닌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나를 마지막에 두지 않기로

jay 님의 글은 "나를 마지막에 두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 안에 놓여 있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일하던 시절, 내 이름은 늘 맨 끝이었다. 오더 마감이 먼저였고, 라인이 먼저였고, 사람들이 먼저였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이제는 하루에 한 시간쯤은 나를 맨 앞에 둔다. 그 한 시간이 글 쓰는 시간이다.


빈 페이지 앞에서

매일 아침 내 앞에는 빈 페이지 한 장이 놓인다. 예전엔 그 하얀 종이가 무서웠다. 무엇을 써도 모자랄 것 같아서.


지금은 안다. 빈 페이지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는 것을. 늦게 잡은 실도 실이고, 늦게 뜬 첫 코도 첫 코다.


늦게 시작했어도 괜찮다.


jay 님이 뜨개바늘로 떠낸 그 문장을, 나는 오늘 펜으로 한 번 더 떠 본다. 한 코씩, 한 문장씩.


— 쉼표 JEONGSEON

인용한 문장은 design by jay 님의 스레드에서, 허락을 받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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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AI와 함께 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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