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안부가 나를 데려다준, 엄마를 닮은 꽃 앞에서 ?
한 번의 안부가 데려다준, 엄마를 닮은 꽃 앞에서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스레드 마실을 다녔다.
한 편의 시를 읽다가 *‘그저 한 번의 안부라도’*라는 대목에서 멈췄다.
안부를 건네고 싶은 얼굴을 떠올리는데, 이상하게 꽃 하나가 먼저 생각났다.
베트남 땀끼.
회사 건물의 허름한 담벼락 아래 피어 있던 보라꽃.
나는 그 꽃을 ‘보라’라고 불렀다.
보라야, 오늘도 잘 있니.
입 안에서 조용히 불러보니, 오래전 출근길이 떠올랐다.
보라를 처음 마음으로 본 날은 친정엄마 기일이었다.
꽃은 그전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베트남에 닿기 두 해 전부터 피어 있었다고 했다. 늘 지나던 길이었는데, 그날따라 보랏빛이 내 마음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엄마의 치맛자락 같았다.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스러운 웃음 같기도 했다.
향기 없이 피어 있는 꽃들 앞에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무슨 말을 먼저 했는지는 다 기억나지 않아도, 그 꽃에게 붙여준 이름은 잊지 않았다.
“보라야, 안녕.”
그날부터 숙소에서 회사로 들어서는 입구에, 인사를 나눌 상대가 생겼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아.”
“오늘 참 많이 힘들었어.”
“내일 또 보자.”
엄마와 대화하듯, 친구와 수다를 떨듯 말을 건넸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먼저 인사한 쪽은 늘 보라였다. 아침 출근 시간에도, 저녁 퇴근 시간에도 그 꽃은 먼저 내게로 걸어와 말을 걸었다. 베트남의 뜨거운 태양 볕 아래서도 꿋꿋이 피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대답했다.
응, 나 왔어.
오늘도 여기 있었구나.
외롭고 쓸쓸한 날에는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음속 말을 꺼내다가 잠시 멈추기도 했다. 보라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내가 오래 서 있어도,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해도 그 자리에 피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 그곳으로 갔다.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하루를, 그 꽃 앞에서 이야기했다.
어느 날, 보라는 뿌리째 뽑혔다.
건물에 해롭다는 이유 하나였다.
그곳을 관리해야 하는 사람의 사정도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꽃이 사라진 날, 나는 그렇게 차분하지 못했다.
매일 인사를 나누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많이 울었다.
꽃이 뽑혔을 뿐인데, 그 앞에서 나누었던 말들까지 한꺼번에 사라진 것 같았다. 엄마를 만나러 가던 작은 길이 끊긴 것 같기도 했다.
그 마음을 쓴 글이 「나는 꽃이 뽑히는 것을 보며 울었다」다.
나는 그 글을 지금도 좋아한다. 오백 편이 넘는 글을 썼지만, 그 글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콕 박혀 있다. 읽을 때마다 엄마를 만난 기분이 든다. 엄마와 수다를 떨던 생각이 나고, 그 사이로 참 많은 세월이 스친다.
어떤 글은 쓰고 나면 다음 글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글 앞에서는 자꾸 머물게 된다. 문장 하나를 읽다가 꽃을 보고, 꽃을 보다가 엄마를 생각한다. 그러다 내가 미처 적어놓지 못한 하루들까지 떠올린다.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글이다.
오늘 남의 시에서 한 번의 안부를 읽다가, 나는 다시 그 담벼락 앞으로 갔다.
꽃이 사라졌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내게는 보라가 여전히 피어 있을 것만 같다.
눈을 감으면 금 간 담벼락과 가느다란 잎들, 그 사이의 보랏빛이 보인다. 출근하는 나를 먼저 알아보던 꽃이 거기 있다.
이제 그 꽃이 피어 있는 곳을 찾아, 나는 내 글을 펼친다.
그러면 엄마에게 하듯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보라야, 나 요즘 글을 써.
너에게 하루를 들려주던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을 건네고 있어.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자기 이야기를 남기면, 나는 그 말을 읽고 답을 해. 아침이면 다른 사람의 글을 찾아가기도 해.
오늘은 그렇게 마실을 다니다가 네 생각이 났어.
한 번의 안부라도 나누고 싶다는 문장을 읽는데, 네가 먼저 떠오르더라.
그때는 네가 있는 줄 알고 걸어갔지.
오늘은 네가 보고 싶어서 글을 펼쳤어.
보라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데 함께한 꽃이다.
말없이 받아주던 그 시간들이 내 안에 남아, 오늘도 나를 글쓰기로 이끈다.
지금도 그 글을 펼치면 베트남의 뜨거운 햇볕 아래로 잠시 돌아간다.
회사 입구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보라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나는 그 앞에 멈춰 서서 엄마에게 하듯 오늘 하루를 꺼내놓는다.
보라야, 오늘도 잘 있니.
네가 먼저 말을 걸어주던 그 마음으로, 나 오늘도 한 편의 글을 쓴다.
오늘 쉬어 간 문장
스레드 마실 중, gody_coach님의 게시물에서 만난 한 줄의 시 ‘그저 한 번의 안부라도’라는 대목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화면 속 보라꽃을 보며 베트남 담벼락 아래에서 매일 인사를 건네던 나의 보라를 떠올렸습니다.
함께 듣는 음악
보라에게 안부를 건네며, 이 노래를 곁에 둡니다.
음악 · truepen (youtube.com/@truepen_music)
음악을 나눠 주신 truepen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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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표 JEONGSEON
#보라꽃 #엄마의기억 #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