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의 며칠을 뒤로하고
호찌민의 며칠은 뜨거웠다.
거리엔 오토바이가 강물처럼 흘렀고, 그 물결이 신호에 멈췄다 다시 흐를 때마다 도시 전체가 한 번씩 숨을 골랐다. 나는 그 흐름을 거슬러 골목을 파고들었다. 좁은 가게엔 오리 부리가 달린 노란 헬멧부터 배트맨,
스파이더맨까지 온갖 색의 헬멧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소란한 색들 한가운데 연둣빛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주인 없이 놓여 있었다.
머리 위 골목 하늘은 어지러운 전선으로 얽혀 있었지만, 그 사이사이 빨강 파랑 초록 노랑 동그란 전구들이 축제처럼 매달려 흔들렸다. 마침 도시는 국경일을 앞두고 있었다.
반미를 파는 노점의 유리장 안에서는 고수 한 무더기와 새빨간 절임 채소가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붉은 옷을 입은 주인이 유리 너머로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낯선 말들 사이를 건너 다니고, 채워야 할 일정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그 모든 것이 좋았다.
다만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좋은 것에도 무게가 있다는 사실이다. 설렘은 우리를 앞으로 끌고 가지만, 그 설렘을 감당하는 데에도 어깨의 힘이 든다. 여행이 즐거울수록, 나는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올라섰다.
그 순간, 세상이 통째로 이불 밑으로 사라졌다. 그 붐비던 거리도, 축제 전구가 흔들리던 골목도, 돌아갈 서울도, 이제 다 보이지 않는다. 발아래엔 끝없이 이어진 구름의 이불뿐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리.
떠나온 곳에서는 이미 멀어졌고, 돌아갈 곳에는 아직 닿지 않은, 그 붕 뜬 시간 속에 나는 잠깐 놓여 있었다.
창밖을 보았다.
하늘의 대부분은 넓고 잔잔한 잿빛이었다. 빛은 겨우 저 아래 수평선 가까이, 아주 좁은 한 줄에만 고여 있었다. 그 좁은 띠 위로 작은 해 하나가 구름 사이에 겨우 몸을 내밀고, 주변으로 붉은 온기를 조용히 번지게 하고 있었다.
화려한 노을은 아니었다. 사진으로 찍어 자랑할 만한 장면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작은 불빛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아쉽지 않았다.
여행이 끝나가는데 아쉬움이 밀려오지 않는다는 것. 예전 같으면 조금 서운했을 그 마음의 자리에, 이번엔 다른 것이 먼저 와 있었다. 안도였다.
다 마쳤다는 것. 이제 집으로 간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이 어깨 위에서 무언가를 스르르 내려놓게 했다. 저 작은 해가 아직 타오르는 게 아니라 하루치의 열기를 조용히 내려놓는 중이었듯이, 나도 그 며칠의 긴장을 그렇게 내려놓고 있었다.
안도라는 감정은 참 독특하다. 기쁨처럼 위로 솟구치지 않는다. 오히려 아래로 가라앉는다. 발밑의 구름 이불이 폭신하게 다 받쳐주고 있으니, 이제 기대도 된다고. 그렇게 몸의 힘이 빠지는 자리에서만 찾아오는 감정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돌아가는 길을 좋아하게 된 것은.
젊을 땐 떠나는 순간만이 여행인 줄 알았다. 공항으로 향하는 새벽, 캐리어를 끄는 소리, 아직 밟아보지 않은 도시를 향한 설렘. 그것이 여행의 전부라고 믿었다. 돌아오는 길은 그저 끝난 축제의 뒷정리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떠남이 설렘이라면, 돌아옴은 안도라는 것을. 그리고 그 안도를 아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비행기는 여전히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작은 해는 서서히 몸을 눕히고, 붉은 띠는 조금씩 옅어져 갔다. 곧 저 이불 밑으로 서울의 불빛들이 나타날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익숙한 일상이, 그 안에 있을 것이다.
아쉬움 없이,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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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표 JEONG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