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달력보다 먼저 공기의 냄새로 찾아온다
오늘 아침,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가을이 담겨 있었다.
아직 8월이다.
한낮에는 여전히 여름이 제법 큰소리를 치고,
햇볕 아래 몇 걸음만 걸어도 이마에 땀이 맺힌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늘 아침 문을 나서는 순간,
공기 어딘가에서 낯익은 냄새가 났다.
가을 냄새였다.
가을에 정말 냄새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한여름의 뜨거운 아스팔트 냄새가 조금씩 옅어지고,
아침 바람 끝에 서늘한 기운 하나가 매달리기 시작하면
몸은 달력을 확인하기도 전에 먼저 계절을 알아본다.
‘아, 가을이 오고 있구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은 아직 여름이었다.
크고 두툼한 구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사이로 파란 하늘 한 조각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여름이 아직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 버티는데
가을이 그 틈으로 살짝 얼굴을 내민 것 같았다.
“나, 여기와 있어.”
그 한마디를 들은 기분이었다.
얼마 전까지 나는 베트남에 있었다.
그곳에서도 아침이 오고 저녁이 왔고,
비가 내리고 햇볕이 쏟아졌다.
그 나름의 계절이 있었겠지만
내 몸이 오래 기억해 온 사계절의 감각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서였을까.
한국으로 돌아와 만난 오늘 아침의 공기가 유난히 반가웠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바람 한 줄기,
하늘빛 하나,
조금 낮아진 아침의 온도가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느껴졌다.
사람에게도
몸이 기억하는 고향의 계절이 있는 모양이다.
가을을 생각하면 나는 이상하게도 먹을 것부터 떠오른다.
갓 쪄낸 밤을 반으로 갈랐을 때 올라오는 달큼한 김.
종이봉투 속에서 아직 따뜻한 군고구마.
껍질을 벗기면 손끝에 향이 묻어나는 귤.
잘 익은 홍시 한 숟갈.
그리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소한 전 냄새와 따뜻한 국물 냄새.
생각만 했는데도 입안에 가을이 고인다.
참 이상하다.
계절은 눈으로 보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우리는 온몸으로 계절을 먹으며 살아왔다.
봄에는 봄나물을 먹었고,
여름에는 수박을 잘라먹었고,
가을에는 햇곡식과 과일을 기다렸고,
겨울에는 뜨거운 국물 앞에 둘러앉았다.
그래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보다 혀가 먼저 기억을 꺼내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완연한 가을은 아니다.
아마 내일 낮이면
“무슨 가을이야, 아직 덥구먼.”
하고 웃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계절은 어느 날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아니니까.
조금씩 온다.
아침 공기에 한 숟갈,
저녁 바람에 한 꼬집.
하늘빛에 조금,
구름 사이에 조금.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긴소매를 하나 꺼내 입으며 말한다.
“벌써 가을이네.”
하지만 가을은 그날 온 것이 아니다.
오늘처럼 아무렇지 않은 아침,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
하늘에서 가을을 보았다.
아니,
공기 속에서 가을 냄새를 맡았다.
베트남에서는 잠시 잊고 있던
내 몸속의 계절 감각 하나가
다시 깨어난 것 같았다.
그래서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유난히 맛있어 보였다.
곧 밤이 익고,
고구마가 달아지고,
들판의 곡식이 고개를 숙이겠지.
그리고 사람들의 식탁에도
따뜻하고 고소한 가을이 하나둘 올라올 것이다.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조금 배부르다.
가을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부터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첫 냄새를 맡았다.
참 맛있는 계절이 오고 있다.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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