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에는 시간이 적히지 않았다

돈은 아끼며 살았는데, 시간은 왜 그렇게 흘려보냈을까

by쉼표JEONGSEON


오래된 가계부를 넘기다 문득 손이 멈췄다.


숫자들은 빼곡했다. 이 날은 얼마가 들어왔고, 저 날은 얼마가 나갔는지. 한 달의 살림이 촘촘하게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디에도 '시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돈은 그렇게 아끼며 살았는데, 시간은 왜 그토록 헤프게 흘려보냈을까.


돌아보면 나는 늘 급했다.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고, 오늘 하루를 버티는 일이 먼저였다. 그 사이사이 지나간 계절들, 무심히 흘려보낸 저녁들, 그냥 스쳐 보낸 얼굴들. 그때는 몰랐다. 그 평범하기만 했던 시간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음을.


가장 아까운 건,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시간이었다.


바쁘게 사는 동안 내 삶의 뒤안길은 늘 어둠 속에 있었다. 앞만 보고 걷느라, 지나온 길에 어떤 풍경이 있었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 뒤안길에도 참 많은 것이 피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때 곁에 있던 사람, 그때만 볼 수 있던 노을, 그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던 마음들.


그렇다고 이제 와 후회하려는 건 아니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치열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 서 있는 거니까. 다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고 싶어 졌을 뿐이다.


남은 시간만큼은 헤프게 흘려보내지 않기로 한다. 조금 더 소중하게, 조금 더 아름답게. 창밖으로 지는 노을을 한 번 더 바라보고, 곁에 있는 사람의 안부를 한 번 더 묻고, 오늘 하루의 뒤안길을 가만히 돌아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가계부에는 여전히 시간이 적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에 적기로 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시간을 마음에 적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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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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