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작고 조용한 고백
어떤 글은 다 읽고 나면 내용이 남는다.
그런데 어떤 글은 이상하게 사람이 남는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희미해지는데
그 문장을 쓰고 있었을 사람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오늘 한 사람의 글을 읽다가 그랬다.
슬프다는 말도 없었다.
외롭다는 말도 없었다.
힘들다는 말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그 문장 너머에서 무언가를 들었다.
소리 없는 외침 같은 것.
그런데 말하지 않은 소리를 나는 왜 들었을까.
우리는 글을 읽을 때 활자만 읽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어떤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꺼내는 이유,
자신의 성취를 이야기하다 슬며시 뒤로 물러나는 순간,
한참 이야기한 뒤 “별것 아닙니다”라고 덧붙이는 말.
그런 것에도 마음은 묻어난다.
무엇을 썼는지만큼 무엇을 쓰지 않았는지도 글이 된다.
오래전 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상상한 적이 있다.
눈가의 주름 하나,
잠깐 굳어지는 입술,
웃고 있는데도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눈빛.
얼굴에는 말하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생각해 보니 글도 그랬다.
얼굴에 말하지 않은 시간이 남는다면,
글에는 쓰지 않은 마음이 남는다.
누군가의 삶을 몇 편의 글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이 외롭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글을 읽고 있는 동안
내 안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자꾸 일어났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그 사람의 외로움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문장이 내 안에 있던 어떤 감정을 건드렸을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만 읽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문장을 통과하며
나 자신도 함께 읽는다.
내가 지나온 시간,
혼자 견뎠던 순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마음.
타인의 문장 하나가
내 안의 오래된 방 문을 열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남의 글을 읽다가
뜻밖에 내가 울컥하기도 한다.
나는 가끔 사람의 글에서 이런 목소리를 듣는다.
“나를 알아주세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래 생각해 보니 조금 달랐다.
그보다 훨씬 작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나 여기 있습니다.”
대단하다고 말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문장 몇 줄에 놓아두고
세상을 향해 작은 불 하나를 켜두는 것.
누군가 발견하면 좋고,
발견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래서 더 오래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크게 외치는 목소리는 금방 들린다.
그러나 아주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면
읽는 사람도 잠시 조용해져야 한다.
‘구조신호’라고 하면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외치는 장면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삶에는 조금 다른 구조신호도 있는 것 같다.
오늘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는지.
우리는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고
글로 쓰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것 역시 세상을 향해 보내는 작은 신호인지 모른다.
나는 오늘도 여기 있었다고.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매일 글을 쓴다.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내가 쓴 글 속에도
내가 의도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어 있을까.
나는 괜찮다고 썼는데
누군가는 그 문장에서 내 쓸쓸함을 발견하고,
나는 웃으며 썼는데
누군가는 그 웃음 뒤에 숨겨놓은 시간을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닿자
조금 두려워졌다.
글은 생각보다 정직한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까.
아마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비슷한 길을 걸어본 사람은
발자국만 보고도 그 길의 경사를 안다.
오래 기다려본 사람은
“기다렸다”는 한마디가 얼마나 긴 문장인지 안다.
혼자 견뎌본 사람은
“괜찮다”는 세 글자 뒤에 무엇이 숨어 있을 수 있는지도 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살아본 만큼 타인의 문장을 듣는 것인지도 모른다.
읽는다는 것은 눈으로 활자를 따라가는 일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살아온 시간으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만져보는 일이었다.
오늘도 수많은 문장이 화면 위를 지나간다.
나는 그중 몇 문장 앞에서 멈춘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멈춘 것은
좋은 문장 앞에서만은 아니었다.
그 문장 뒤에 서 있는
한 사람의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내 귀에는 들려왔던 목소리.
“나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언젠가
같은 말을 소리 없이 세상에 건넨 적이 있었으므로.
사람의 얼굴에는 말하지 않은 시간이 남고,
사람의 글에는 쓰지 않은 마음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읽는다.
당신에게도 그런 글이 있었나요?
읽고 난 뒤 문장은 잊혔는데
이상하게 그 글을 쓴 사람의 마음만 오래 남았던 글.
… 쉼표 JEONGSEON
#에세이 #감성에세이 #글쓰기 #문장의힘 #마음기록 #사람의마음 #오늘의생각 #삶의기록 #온라인카지노작가 #쉼표JEONG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