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12초짜리 세계를 하나
만들었다

완성된 것은 짧았지만, 그곳에 도착하기까지의 나는 결코 짧지 않았다

by쉼표JEONGSEON


12초짜리 영상을 만드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화면 속 고양이 두 마리는 짧은 영어 문장을 주고받는다. 한 마리가 묻는다.

“오늘 기분이 어때?”

다른 한 마리가 씩씩하게 대답한다.

“오늘 나는 행복해.”

영상은 질문하고, 대답하고, 한 번 더 따라 말하는 사이에 끝난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잠깐 숨을 고르면 벌써 마지막 장면이다. 보는 사람에게는 눈 한번 깜빡일 정도의 시간이지만, 그 12초를 세상 밖으로 꺼내기까지 나는 수십 번 멈추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네 마리였다.

따뜻한 공부방에 둘러앉아 단어장을 펼치고, 카드에 적힌 단어를 맞히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문제가 있었다. 고양이는 많고 문장은 하나뿐이었다. 세로로 긴 화면 안에 네 마리를 모두 넣으니 정작 보여야 할 문장이 비좁아졌다. 영어를 연습하는 영상인데, 사람들은 영어보다 고양이 구경을 더 열심히 하게 생겼다.

귀여운 것을 덜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미 마음에 들어온 것을 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 마리를 남겼다. 한 마리는 질문하고, 다른 한 마리는 대답하도록 했다. 그러자 화면에 여백이 생겼고 역할이 또렷해졌다. 무엇보다 문장이 다시 중심으로 돌아왔다.

돌아보면 글을 쓸 때도 비슷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질수록 문장의 숨은 짧아졌다. 좋은 표현을 모두 붙잡고 있으면 정작 가장 중요한 한마디가 보이지 않았다. 더 많이 채워야 완성되는 줄 알았는데, 어떤 완성은 덜어낸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고양이 두 마리의 역할을 정한 뒤에는 목소리를 입혀야 했다. 질문하는 목소리와 대답하는 목소리를 나누고, 문장 사이에 따라 말할 시간을 남겨두었다. 음악도 넣었다. 조금 신나는 곡을 골랐더니 영어 문장이 음악 뒤로 숨어버렸다. 음량을 낮추고, 소리가 부드럽게 들어왔다가 사라지도록 앞뒤를 다듬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편집 프로그램이 영상을 저장하지 못했다. 네트워크 오류가 떴고, 녹음한 소리도 불러오지 못했다. 내보내기마저 멈췄다. 재시도 버튼을 몇 번이나 눌렀지만 화면은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프로젝트를 저장할 수 없습니다.’

고작 12초를 만들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평소의 나라면 여기서 슬그머니 물러났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프로그램이 이상하니 내일 다시 해보자고,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포기는 언제나 그럴듯한 문장을 가지고 찾아온다. 몸을 아끼라는 말, 때를 기다리라는 말,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모두 틀린 말은 아니어서 더 쉽게 기대게 된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웹 편집기를 닫고 컴퓨터용 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했다. 다시 이미지를 불러오고, 영상 길이를 맞추고, 목소리와 자막을 하나씩 배치했다. 무료로 내보내려는데 유료 효과가 포함됐다는 알림이 떴다. 음악을 빼고, 효과음을 지우고, 음성 보정 기능도 찾아서 껐다.

영상은 점점 단순해졌다.

처음에 넣었던 화려한 요소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상은 더 분명해졌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한 문장, 질문과 대답만 남았다.

마침내 내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 폴더 안에 작은 동영상 파일 하나가 생겼다. 재생 시간 12초. 그 파일을 바라보며 한동안 웃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영상 가운데 아주 작고 평범한 파일 하나였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 안에는 내가 중간에 돌아서지 않은 시간이 들어 있었다.

처음 배우는 기능 앞에서 머뭇거렸던 나, 자꾸만 뜨는 오류창을 보며 한숨 쉬었던 나, 마음에 들었던 것을 덜어내고 다시 시작했던 나, 끝내 저장된 파일을 몇 번이나 재생해 본 내가 모두 들어 있었다.

우리는 종종 결과의 길이로 노력의 크기를 판단한다.

짧은 영상은 쉽게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짧은 문장은 금세 썼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짧은 것일수록 그 안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더 오래 고민해야 할 때가 있다. 한 줄의 문장 뒤에 한나절의 망설임이 숨어 있고, 12초의 화면 뒤에 수십 번의 선택이 놓이기도 한다.

완성된 것은 짧았지만, 그곳에 도착하기까지의 나는 결코 짧지 않았다.

오늘 내가 만든 것은 동영상 하나만이 아니었다. ‘할 수 있을까’라는 문장을 ‘해봤다’로 바꾸는 작은 통로를 만들었다. 아직 능숙하지 않아도 끝까지 가본 경험, 막히면 다른 문을 찾아도 된다는 기억, 처음이라고 해서 반드시 서툰 자리에서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얻었다.

고양이 두 마리는 12초 만에 영어 수업을 마치고 화면 속에서 퇴근했다.

나는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느라 반나절을 보냈다. 누가 선생이고 누가 훈련생인지 알 수 없는 하루였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나는 안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완성해야 하는 것은 멋진 결과가 아니라, 끝까지 가본 한 번의 경험이라는 것을.

12초짜리 세계는 아주 작았다.

하지만 그 작은 세계를 완성하고 난 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세상은 어제보다 조금 넓어졌다.



이 글 속에서 반나절을 들여 완성한 12초짜리 세계는 아래 영상으로 남았다.
고양이 두 마리가 짧은 영어 문장을 묻고 답하는 작은 수업이지만, 내게는 ‘할 수 있을까’를 ‘해봤다’로 바꾼 첫 번째 기록이다.


https://youtube.com/shorts/JbggXCY_zsQ?feature=share

12초의 화면 뒤에는, 수십 번 멈추고 다시 시작한 반나절의 시간이 놓여 있었다.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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