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 맛집에는 줄을 서지만 글 앞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 앞에서 기꺼이 시간을 쓴다.
새로 생긴 빵집을 찾아 먼 길을 가고, 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줄을 선다. 화면 속에서 치즈가 길게 늘어나는 장면만 보아도 손가락을 멈추고, 누군가 “여기는 꼭 가봐야 한다”라고 말하면 지도부터 저장한다.
음식은 이제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눈으로 먼저 먹고, 이야기를 곁들여 맛보고, 사진으로 남겨 다시 꺼내 보는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그런데 글 앞에서는 사람들이 조금 다르다.
첫 문장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곧바로 다음 글로 넘어간다. 문단이 길면 읽기 전부터 부담스러워하고, 천천히 곱씹어야 맛이 나는 문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맛집 앞에서는 한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한 편의 글에는 몇 초의 시간조차 내어주지 않는 시대.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글도 이제 맛있어야 읽히는 시대가 된 것 아닐까.
맛있는 음식은 식탁에 오르기 전부터 사람을 부른다.
골목 끝에서 흘러나오는 빵 냄새가 발걸음을 돌려세우고, 주방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아직 보이지도 않는 음식의 맛을 상상하게 한다.
글도 비슷하다.
제목은 음식점의 간판이고, 첫 문장은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와 같다. 제목을 보고 문을 열었더라도 첫 문장에서 아무런 향을 느끼지 못하면 독자는 자리에 앉기 전에 돌아설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제목을 고치고, 첫 문장을 다시 쓴다.
조금 더 궁금하게 만들까.
조금 더 세게 시작할까.
아니면 조용히 말을 걸까.
그러나 냄새가 강하다고 반드시 맛있는 음식은 아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를 불러놓고 정작 본문에 내어놓을 것이 없다면, 그것은 간판만 화려한 식당과 다르지 않다. 첫 입은 강렬하지만 먹을수록 속이 불편한 음식처럼, 과장된 문장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독자의 손가락을 멈추게 하는 기술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손가락이 글의 끝까지 내려가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진심이다.
요즘 글쓰기에서는 ‘후킹’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첫 문장에서 독자의 마음을 붙잡아야 한다고 한다. 짧고 강하게 시작하고, 궁금증을 만들고, 끝까지 읽을 이유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좋은 첫 문장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독자에게 한 입만 맛보라고 권하는 애피타이저와 같다.
그러나 애피타이저만 맛있다고 해서 좋은 식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첫 문장에서 사람을 불러들였다면 그다음에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내놓아야 한다. 내가 살아온 시간,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 오래 품고 있던 질문을 충분히 익혀 본요리로 올려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뒷맛이 남아야 한다.
글을 다 읽고 화면을 닫은 뒤에도 문장 하나가 자꾸 떠오르는 것. 그 문장 때문에 자신의 삶을 잠시 돌아보게 되는 것.
나는 그것이 좋은 글이 가진 가장 깊은 맛이라고 생각한다.
후킹은 애피타이저이고, 이야기는 본요리이며, 사유는 오래 남는 뒷맛이다.
음식은 불이 너무 세면 겉만 타고 속은 익지 않는다. 반대로 불이 너무 약하면 재료가 제맛을 내기도 전에 흐물흐물해진다.
문장도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면 독자는 숨이 막힌다. 반대로 너무 아껴 쓰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다.
때로는 센 불로 단숨에 감정을 끌어올려야 하고, 때로는 약한 불로 오래 끓여야 한다.
웃음이 필요한 곳에는 유머를 한 꼬집 넣는다. 아픔을 다루는 곳에서는 성급하게 달콤한 위로를 뿌리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은 자리에는 여백을 남기고, 꼭 전해야 하는 말은 싱겁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독자가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온도로 마음을 익혀 내놓는 일에 가깝다.
내가 글을 쓰면서 문장을 자꾸 고치고, 문단의 순서를 바꾸고, 쉼표 하나의 자리를 오래 바라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직 익지 않은 마음을 서둘러 독자의 식탁에 올리고 싶지 않아서다.
세상에는 한입 먹는 순간 감탄하게 되는 음식이 있다.
화려하고 강렬해서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음식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 번 먹고 나면 다시 생각나지 않는 맛도 있다.
반대로 처음에는 평범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문득 떠오르는 음식도 있다.
지친 날이면 생각나고, 마음이 허기질 때면 다시 찾게 되는 맛.
나는 내 글이 그런 글이었으면 좋겠다.
읽는 순간 누군가를 놀라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조용한 밤에 문장 하나가 다시 떠오르는 글. 마음이 고단한 날, 잠시 찾아와 숨을 고를 수 있는 글.
조회수라는 화려한 접시보다 한 사람의 마음을 든든하게 채우는 한 끼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물론 글을 세상에 내놓는 이상 읽히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도 더 많은 사람이 내 글을 발견해 주기를 바란다. 제목을 고민하고, 첫 문장을 다듬고, 독자의 눈길이 어디에서 머무는지 살핀다.
그러나 읽히기 위해 글의 속까지 바꾸고 싶지는 않다.
유행하는 양념을 조금 빌릴 수는 있어도, 내가 가진 재료의 본래 맛까지 감추지는 않으려 한다.
글 한 편을 완성하는 일은 한 끼를 만드는 일과 닮았다.
마음속에서 재료를 꺼내고, 필요 없는 부분을 덜어낸다. 문장을 썰고 다듬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는 과감히 빼낸다. 너무 뜨거운 감정은 한 김 식히고, 오래 묵혀야 할 생각은 충분히 기다린다.
어떤 문장은 오래 끓여야 제맛이 나고, 어떤 문장은 싱싱할 때 바로 써야 살아 있다.
그렇게 한 편의 글이 완성되면 나는 조심스럽게 독자의 식탁 위에 그것을 올려놓는다.
너무 싱겁지는 않을까.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을까.
내가 느낀 맛이 독자에게도 전해질까.
여전히 걱정하지만 이제는 조금 안다.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음식이 없듯,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글도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재료를 고르고, 정직한 마음으로 요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먼 길을 떠나는 시대.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이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문장의 주방에 불을 켠다.
눈길만 끌고 사라지는 글이 아니라, 읽고 난 뒤 마음 한편이 조금 든든해지는 글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내 글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해준다면 참 좋겠다.
“그 글,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는 맛이었어요.”
그 한마디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문장을 천천히 익힌다.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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