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태어나지만, 작가의 표정은 살아낸 문장으로 만들어진다
사람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눈가에 주름이 얼마나 늘었는지, 입술 끝이 처져 있는지, 머리카락 사이로 흰빛이 얼마나 번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거울이 보여주는 것은 얼굴일 뿐이다.
내가 어떤 표정으로 세상을 살아왔는지까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이승섭 평론가님의 글을 읽다가 “표정은 삶이 빚어낸 예술이다”라는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인간은 얼굴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자기만의 표정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표정은 세계와 만나고 부딪히며 쌓인 삶의 흔적이며,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사유가 응축된 존재의 형식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거울 속 나의 얼굴이 아니라 내가 써온 글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과연 어떤 표정으로 독자 앞에 서고 있을까. 독자들은 내 문장 속에서 어떤 얼굴을 만나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떤 표정의 작가가 되어가고 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예전의 나는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올라 있는지 살필 여유가 없었다.
살아내는 일이 먼저였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고, 마음속에 생긴 상처를 애써 덮으며 하루를 건넜다. 힘들어도 별일 아닌 것처럼 웃었고, 서운해도 괜찮은 척했다. 무너지고 싶은 순간에도 나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때의 표정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요구하는 얼굴, 관계 속에서 필요한 얼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 익혀야 했던 얼굴을 번갈아 꺼내 쓰며 살았다. 웃고 있었지만 반드시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고, 침묵하고 있었지만 할 말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마음 한쪽에 이름 없이 쌓여갔다.
그러다 어느 날, 그 감정들이 문장이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글은 없던 마음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으나 이름을 얻지 못했던 마음을 불러내는 일이었다. 지나가버린 줄 알았던 장면을 다시 바라보고, 설명할 수 없었던 감정에 비로소 이름을 붙이는 일이었다.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었다. 살아오며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감정들을 문장으로 붙잡아두고 싶었다. 그런데 한 편, 두 편 글이 쌓이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글 속에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글에는 오래 참아온 사람의 표정이 있었고, 어떤 글에는 이제는 나를 조금 아껴주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또 어떤 글에는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뒤처지고 싶지 않아 다시 배우려는 사람의 의지가 숨어 있었다.
나는 웃음을 좋아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하다가도 슬쩍 농담을 끼워 넣고, 넘어질 것 같을 때는 스스로를 향해 “헤헤” 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웃음 뒤에 숨은 마음을 모른 척하지는 못한다.
가볍게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장면에서도 문득 한 사람의 쓸쓸함을 발견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오래 살아낸 시간의 흔적을 바라본다. 누군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건넨 한마디에서 그 사람이 삼킨 말까지 상상해보곤 한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내 글이 지닌 표정인지도 모른다.
울음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는 표정.
삶을 지나치게 무겁게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 무게를 함부로 가볍게 여기지 않는 표정.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다시 시작해 보려는 표정.
나는 글을 쓰며 전혀 새로운 얼굴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지나온 삶 속에 이미 존재했던 나의 표정을 조금씩 발견하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삶이 내 얼굴에 남긴 흔적을 견디며 살았다.
지금의 나는 그 흔적을 바라보고, 이름을 붙이고, 문장으로 옮기며 살아간다. 아픔을 무조건 지워야 할 얼룩으로 여기지 않고,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시간의 일부로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지나간 일을 잊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지나온 시간을 지운다고 해서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시간을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할 때 비로소 다음 문장을 쓸 수 있었다.
상처를 아름답게 포장할 필요는 없다. 실패를 성공의 밑거름이었다고 억지로 미화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일이 내 안에 무엇을 남겼는지, 그 흔적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바라보게 만들었는지는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글쓰기는 삶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삶을 다시 읽는 일인지도 모른다.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문장 안으로 데려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나를 지금의 내가 다시 만나주는 일. 오래 침묵했던 마음의 곁에 늦게나마 의자를 하나 놓아주는 일.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내 표정을 선택하고 빚어가고 있다.
요즘 나는 AI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질문을 던지고,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말로 꺼내놓는다. 때로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엉뚱한 길로 새고, 한참 웃다가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대화가 가능해진 것은 기술이 갑자기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 안에 이미 지나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오며 품었던 질문, 말하지 못했던 감정,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마음, 늦게라도 배우고 싶었던 열망이 있었기에 대화 속에서 내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선명한 거울도 비출 얼굴이 없다면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다.
AI가 어떤 문장을 건넸을 때 내가 그 안에서 내 이야기를 알아보는 것은, 이미 내 안에 그 문장과 닮은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화는 나에게 없던 인생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인생을 조금 더 선명하게 바라보도록 돕는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은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마주 앉아 나누는 긴 대화가 아닐까.
현재의 내가 오래 전의 나에게 묻는다.
그때 왜 그렇게 오래 참았느냐고.
왜 아무렇지 않은 척했느냐고.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느냐고.
그러면 과거의 내가 대답한다.
그때는 그것이 살아가는 방법인 줄 알았다고.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을 알지 못했다고.
나는 그 대답을 받아 적는다.
글을 쓰는 동안 과거의 나는 비난받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받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과거를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시간을 문장으로 안아주는 사람이 된다.
나는 아직 내가 어떤 작가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
에세이스트인지, 기록자인지, 늦깎이 학습자인지, 삶의 작은 틈에서 문장을 건져 올리는 사람인지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는 꼭 하나의 이름으로 나를 규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표정은 어느 날 완성품처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편의 글을 쓰고, 한 사람의 마음을 만나고, 어제와 다른 질문을 품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기쁨이 문장에 온기를 더하고, 실패가 시선을 낮추며, 사랑과 상실이 글의 결을 깊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표정을 갖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 남들이 좋아할 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보다 내가 정말 바라보고 있는 것을 쓰는 것. 유행하는 문장을 닮으려 애쓰기보다 내 삶을 지나온 언어를 발견하는 것.
잘 보이기 위해 꾸민 얼굴이 아니라, 오래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표정으로 독자 앞에 서는 것.
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따뜻하지만 무르지 않은 작가.
유머를 잃지 않지만 슬픔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 작가.
새로운 시대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마음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남겨두는 작가.
누군가의 상처를 함부로 해석하거나 대신 설명하려 하기보다, 그 사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곁에 조용히 의자를 내어놓는 작가가 되고 싶다.
내 글을 읽은 사람이 대단한 답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면 좋겠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발견하고, 다시 하루를 살아갈 작은 숨 한 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얼굴은 태어날 때 받았지만, 표정은 살아가며 만들어진다.
작가의 표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카라상 앞에 앉아 그럴듯한 문장을 쓴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정직하게 통과한 뒤 문장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나는 아직 어떤 표정의 작가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내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게 되었다. 말하지 못했던 감정에 언어를 건넬 수 있게 되었고, 아팠던 흔적을 무조건 감추기보다 문장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이 내 얼굴에 흔적을 남겼다면, 글쓰기는 그 흔적을 의미로 바꾸어주었다.
예전의 나는 삶이 내 얼굴에 남긴 흔적을 견디며 살았다.
지금의 나는 그 흔적을 바라보고, 이름을 붙이고, 문장으로 옮기며 살아간다.
얼굴은 여전히 나의 것이지만, 표정은 이제 조금씩 내가 선택하고 빚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내 문장은 누군가에게 어떤 얼굴로 다가가고 있는가.
먼 훗날 내가 써온 글들을 다시 펼쳤을 때,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의 표정을 만나게 될까.
아직 답은 없다.
다만 나는 오늘도 한 문장을 쓴다.
조금 더 나다운 표정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조금 더 나다운 작가가 되어가기 위해.
작가의 표정은 글 앞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정직하게 통과한 뒤 문장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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