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면 창은 나를 되비춘다
창밖을 보려다, 나를 보았다.
저녁이 내려앉으면 유리창은 두 얼굴을 가진다. 낮에는 바깥을 보여주더니, 어둠이 짙어질수록 나를 되비춘다. 도시의 흐린 불빛을 세고 있던 눈이 문득, 유리에 겹쳐 뜬 내 얼굴과 마주쳤다.
낯설었다.
거기,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두 팔로 제 몸을 감싸 안은 채.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언제부터인지 나를 껴안고 있었다는 것을. 식은 커피잔은 그대로였고, 데우러 일어설 힘도 없이, 나는 그냥 나를 안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아무도 안아주지 않는 저녁이면 몸이 먼저 알았다. 머리로 결심하기도 전에 두 팔이 스르르 올라와 어깨를 감쌌다. 어릴 적 넘어져 울 때 엄마 품을 파고들던 그 자리를, 이제는 내 팔이 대신한다. 다 자란다는 건 어쩌면, 나를 안아줄 사람을 내 안에서 찾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유리 속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울고 있지는 않았다.
무너진 얼굴도 아니었다. 다만 아주 먼 곳을 보는 눈 속에, 오늘 하루 끝내하지 못한 말들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삼킨 문장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저 다물린 입술 뒤에서 천천히 무거워질 뿐이다.
이게 고독이구나, 싶었다.
외로움이라면 전화기를 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부르고, 불빛을 세며 사람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고독은 밖으로 흐르지 않는다. 안으로만 잠긴다. 부를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은 그저 나와 마주 앉아야 할 시간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아는 것이다.
한때 나는 이런 저녁의 내가 참 초라하다고 여겼다. 혼자 창가에 앉아 식은 커피를 데우지도 못한 채 나를 감싸 안는 모습이, 어딘가 실패한 사람 같아서. 그래서 서둘러 약속을 잡고, 화면을 켜고, 소음으로 그 자리를 덮으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도망치지 않았다.
유리 속 그 얼굴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고, 나는 나를 마주 보았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초라하지 않았다. 제 몸을 껴안을 줄 아는 사람은 초라한 게 아니다. 그건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아무 데도 나를 버려두지 않았다는 조용한 증거였다.
쉼표는 문장이 끝났다는 표시가 아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말을 준비하는 자리다.
이 저녁도 그렇다. 내 삶이 멈춰버린 자리가 아니라, 잠시 멈춰 나를 껴안는 자리. 다음 계절로 건너가기 전, 창가에 앉아 숨을 고르는 시간.
곧 나는 일어날 것이다. 식은 잔을 치우고, 불을 켜고, 다시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이 저녁 한켠을 온전히 나에게 내어주었다는 것—그건 참 다정한 일이었다.
유리에 비친 얼굴에게 나는 나직이 말했다.
오늘도 잘 견뎠어.
누군가를 껴안기 전에, 먼저 너를 껴안을 줄 아는 사람이라서.
그거면 됐어.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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