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라는 신호가, 실은 다시 피어나라는 말이었다
길가를 걷다 걸음이 멈췄다.
짙은 초록의 울타리, 그 사이로 흰 꽃 한 송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새하얀 꽃잎 한가운데 붉은 마음이 번져 있는 꽃. 무궁화였다.
화단 한복판에서 뽐내는 것도 아니고, 누가 봐 달라 부르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문득 오래된 놀이 하나가 떠올랐다.
술래가 벽을 보고 그 말을 외는 동안 우리는 조심조심 다가가고, 술래가 돌아보는 순간 모두 그 자리에 멈춰 서야 했던 놀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걸리고 마는, 멈춤이 규칙이던 놀이.
어쩌면 우리는 그 시절부터 이미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잘 멈추는 사람이 끝까지 남는다는 것을.
멈추라는 신호였다.
그 꽃 이름 자체가 나에게는 멈추라는 말처럼 들렸다.
서둘러 지나가려던 걸음을, 흘려보내려던 시간을, 여기서 잠깐 세워 두라고.
나는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걸음을 멈추고, 꽃 앞에 조금 오래 서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 꽃은 멈춤만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무궁화(無窮花). 다함이 없는 꽃이라는 뜻이다. 한 송이는 아침에 피어 저녁이면 조용히 진다.
하루살이처럼 짧은 목숨이다. 그런데 그 곁을 보면, 아직 열리지 않은 봉오리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오늘 한 송이가 지면, 내일 그 옆의 봉오리가 문을 연다.
그렇게 여름 내내, 이 꽃은 단 하루도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지고도, 끝나지 않는 꽃.
나는 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멈추라는 말과 이어지라는 말이 어떻게 한 이름 안에 함께 들어 있는지, 그게 신기하고 또 고마웠다.
무궁화는 멈춤이 곧 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 송이의 멈춤은, 다음 한 송이가 피어나기 위한 잠깐의 숨이라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살다 보면 자꾸 멈추게 되는 자리가 있다.
하던 일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 걸음이 더는 나아가지 않는 시간.
그럴 때마다 나는 그 멈춤이 끝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꽃 앞에서 생각이 바뀐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자리다.
한 송이가 진 그 빈자리 위로, 이튿날 새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제 그 말은 나에게 멈추라는 신호이자, 동시에 다시 피어나라는 인사가 되었다.
오늘 무언가를 내려놓았다면, 그건 내일 다른 무언가를 피워 올리기 위한 숨 고르기일 뿐이라고.
다함이 없다는 건 결국, 멈추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흰 꽃 한 송이가, 붉은 마음을 조용히 켜 놓고 있었다.
그 옆의 봉오리들은 여전히 제 차례를 기다리며 단단하게 여물어 가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걷기로 했다. 멈춰야 할 때는 멈추고, 다시 피어야 할 때는 서슴없이 피어나면서.
멈추어도 괜찮다. 다함이 없으니까.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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