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앉으면, 두 개의 바다가 겹친다

베트남의 노을과 오늘의 창이, 한 유리에 나란히 저물었다

by쉼표JEONGSEON


창가에 앉는다.


노을이 물드는 시간, 나는 늘 이 자리로 온다. 손끝에는 펼쳐 둔 노트가 있고, 그 곁에는 펜을 꽂아 둔 낡은 화병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자리인데, 이상하게도 이 창 앞에만 앉으면 마음이 한 뼘 낮아진다. 어깨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내려앉는다.


창밖으로 바다가 있다.

ChatGPT Image 황금빛 해변을 향한 여유로운 순간2026년 7월 28일 오전 11_43_19.png두 개의 바다가, 한 창에 나란히 저물던 저녁.

이미지 기획·디렉션 쉼표 JEONGSEON · AI 생성(ChatGPT)


그런데 그 바다는, 지금 이곳의 바다가 아니다.


황금빛으로 번지는 노을, 모래 위로 끌어올린 작은 어선들, 파도가 밀려드는 자리에서 손을 맞잡고 도는 사람들. 나는 그 풍경을 안다. 오래전 어느 계절, 내가 매일 마주하던 바다다. 지금 나는 이 창 안에 앉아 있는데, 창밖에는 그때의 바다가 걸려 있다. 두 개의 시간이 한 유리창에 겹쳐, 나란히 저문다.


신기한 일이다.


분명 다른 자리에서 찍힌 두 장면인데, 이렇게 하나로 포개어 놓으니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안에서 어떤 순간들은 원래 이렇게 겹쳐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와 그때의 바다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한 프레임 안에 다정하게 앉아 있는 것처럼.

창이란 참 묘한 것이다.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이면서, 동시에 안과 밖을 이어 주는 통로다. 창이 없다면 나는 바다를 볼 수 없고, 창이 있어서 나는 바다에 젖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발을 딛고서도 저 먼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것, 그 절묘한 거리감이 나는 좋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딱 한 뼘의 유리만큼.

노을 앞에서, 손이 먼저 멈춘다.


무언가를 적으려고 펜을 들었다가, 결국 노트 위에 손만 가만히 얹어 둔다. 급하게 문장을 붙잡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다. 하루가 저물며 잠시 숨을 고르는 이 시간에는, 쓰는 일보다 바라보는 일이 먼저다. 노을은 하늘이 하루에게 건네는 쉼표 같은 것.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라고, 붉게 번지며 타이르는 것 같다.


나는 그 말을 오래 들여다본다.

빠르게 흘려보낸 시간도, 여기 창가에 앉으면 다시 천천히 되감긴다. 손목에서 시계가 째깍 이 지만, 이 자리에서만큼은 그 소리가 재촉이 아니라 반주처럼 들린다. 서두르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서두르지 않아서 시간은 더 선명하게 남는다.


이윽고 해가 수평선에 닿는다.


내일이면 저 해는 또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이 창가에 앉을 것이다. 어제의 바다와 오늘의 창을 겹쳐 놓고, 아직 오지 않은 바다를 마저 그려 넣으면서. 지나온 자리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밑그림 삼아 다음 장면을 이어 그리는 일. 나에게 쓴다는 건 늘 그런 것이었다.


노을이 마지막 빛을 내려놓는다.


나는 다시 펜을 든다. 이제야 첫 문장이 온다.


멈추어 바라본 만큼, 마음은 더 멀리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그 걸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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