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값보다 사람 얼굴을 먼저 기억하던 곳
시골 우리 동네에는 상점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상점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엄니, 나 전빵 갔다 올라요.”
“어디 간다고?”
“전빵이요, 전빵.”
상점이라는 말보다 전빵이라는 말이 입에 더 잘 붙었다. 동네에 전빵이 하나뿐이었으니 이름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전빵에 간다고 하면 모두가 그곳을 떠올렸다.
우리 집에서 전빵까지는 논둑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도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그 길은 세상에서 가장 긴 장터 가는 길처럼 느껴졌었다.
봄이면 보리 이삭을 손바닥으로 훑으며 갔고, 여름이면 발등을 덮는 풀을 걷어차며 갔다. 가을에는 길가에 피어있던 쪼끄만 들국화를 꺾느라고 자꾸 한 눈을 팔았다.
엄니는 그럴 때마다 내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아야, 해찰하지 말고 얼른 댕겨와라잉!”
“알았당께요!”
대답은 크게 했지만 발걸음은 좀처럼 빨라지지 않았다.
전빵 앞에는 나무로 만든 평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평상 모서리는 오래 닳아 반질반질했고, 여름이면 동네 어른들이 그곳에 앉아 부채질을 연실 해됐다.
“오늘 참말로 징~ 허게 덥네잉.”
“그라게 말일쎄. 사람을 삶아 묵어불랑갑네.”
할배들은 덥다고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도 평상을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더위는 사람을 삶아 먹을 기세였지만, 전빵 앞 이야기는 해가 넘어갈 때까지 식을 줄 몰랐다.
전빵의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면 여러 냄새가 한꺼번에 코로 들어왔다.
간장 냄새, 빨랫비누 냄새, 석유 냄새, 밀가루 냄새, 과자 봉지 냄새.
하나씩 떼어놓으면 어울리지 않을 것들이었지만, 그 냄새들이 한데 섞여야 비로소 우리 동네 전빵 냄새가 되었다.
문 가까이에는 고무신과 쓰레빠가 걸려 있었고, 벽에는 라면과 과자 봉지가 빨랫줄처럼 매달려 있었다. 한쪽에는 노란 설탕 봉지와 밀가루 푸대가 쌓여 있었고, 계산대 밑에는 막걸리병하고 소주병이 주둥이를 맞댄 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그들의 마음을 붙잡는 곳은 유리 진열장이었다.
눈깔사탕이며 껌이며 쫀드기며, 이름도 모를 울긋불긋한 과자들이 유리 너머에서 아그들을 꼬시고 있었다.
옆구리 호랑 안에는 동전 한개뿐인디, 묵고 싶은 것은 어찌나 많은지 눈알만 이짝저짝 바쁘게 굴러댕겼다.
“아짐, 요것은 얼마요오?”
“오십 원이다.”
“그라믄 요것은 얼마라우?”
“그것도 오십 원인디, 살라냐?”
“요 째끄만 거시 오십 원이요?”
전빵 아짐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쬐끔해도 사탕은 사탕이제. 니가 쬐끔하다고 밥 덜 묵냐?”
옆에서 듣고 있던 할배들이 껄껄 웃었다.
나는 입을 삐죽 내밀고 옆구리 호랑 안의 동전을 다시 만지작거렸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질 때까지 고민한 끝에 사탕 두 개를 골랐다.
그러면 아짐은 꼭 한마디를 보탰다.
“요것으로 할 것이냐?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러라잉.”
“알았어라우, 요것으로 할라요오.”
그렇게 대답하고도 전빵 문을 나서는 순간, 고르지 않은 과자가 생각났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우리는 또랑에서 해가 기울도록 물장구를 쳤다.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고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놀고 나니 목이 말랐다.
나는 집으로 뛰어가 토방 위에 놓인 엄니의 동전 지갑을 기웃거렸다.
엄니가 부엌에서 물었다.
“시방 거그서 뭐 하고있다냐아?”
“암것도 안 해라우.”
“암것도 안 허는 손이 왜 엄니 지갑을 건드린다냐?”
나는 얼른 손을 뗐다.
잠시 뒤 엄니가 부엌에서 나와 오십 원짜리 동전 한 개를 내 손에 지어줬다.
“가서 하드 하나 사 묵어라.”
“하드 사묵으라고?”
“그 대신 동생하고 노나 묵어라잉.”
그 말에 금세 아랫입술이 뿌욱 티어나왔다.
“하드 한나를 어떻게 노나 묵어라우?”
“반씩 노나 묵으면 되제. 니 입만 입이고 동생 입은 주둥이냐?”
나는 동전을 꽉 쥐고 전빵으로 달려갔다.
전빵 앞 냉동고에는 아그들이 함부로 열지 못하도록 두꺼운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아짐! 하드 하나 살란디, 자물통 좀 열어주씨요.”
아짐이 열쇠 꾸러미를 들고 나와 자물통을 열어줬다.
두 손으로 냉동고 뚜껑을 힘껏 들어 올리자 하얀 냉기가 얼굴로 쏟아졌다.
그 안에는 하드들이 보물처럼 들어 있었다.
ALT
전라도 시골 전빵에서 아짐이 낡은 냉동고 뚜껑을 열어주고, 오십 원짜리 동전을 든 여자아이가 여러 하드를 들여다보는 모습.
나는 한참을 뒤적이다가 가장 커 보이는 것을 골랐다. 포장지에는 빨간 딸기가 그려져 있었다.
“아짐, 요거 하나 주씨요.”
전빵 아짐은 하드를 받아 들고 말했다.
“백 원인디, 살라냐?”
“백원이요? 울 엄니가 오십원밖에 안 줬는디, 요거 못사겄는디?”
“그라믄 저짝 막대기 하드 사 묵어라. 그거는 오십원잉께.”
나는 손바닥 위의 오십 원을 내려다보았다.
냉동고 속에서 가장 큰 것을 골라낸 내 눈썰미가 갑자기 원망스러웠다.
“그라믄 안 살라요.”
하드를 다시 넣으려고 하자 아짐이 포장지를 붙잡았다.
“놔둬라.”
“돈이 모자란디요.”
“나머지는 담에 주면 되제.”
“엄니가 외상은 하지 말라고 했는디요.”
아짐은 계산대 옆에 놓인 낡은 공바카라을 펼쳤다.
“요것이 시방, 느그 엄니가 한 외상 장부잉께 여그다 적어노마.”
“엄니는 여그 없는디요.”
“니가 느그 엄니 딸잉께 여그다 적으믄 느그 엄니 외상이지, 누구 외상이겄냐잉.”
어린 마음에도 어딘가 계산이 안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드가 손에서 녹기 시작하자 더 따질 새가 없었다.
“그라믄 내일 꼭 갖다드릴게라우.”
“알았응께 언능 가서 묵어라. 물 돼불겄다.”
나는 하드를 들고 전빵 밖으로 뛰어나왔다.
동생이랑 반씩 노나 묵으라는 엄니의 말이 떠올랐지만, 집으로 가는 동안 한쪽 끝을 아주 조금씩 핥았다.
한 번만 핥는다는 것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동생 몫이 내 몫보다 조금 작아져 있었다.
동생은 하드를 번갈아 살피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누나 것이 더 큰디?”
“원래 이렇게 생긴 것이여.”
“거짓말허지 마. 누나가 묵었제?”
“안 묵었당께.”
“입술이 빨간디?”
그날 나는 하드 반쪽보다 더 긴 변명을 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엄니는 내 손에 오십 원짜리 동전을 쥐여주었다.
“전빵 아짐한테 갖다드리고 와라.”
“아짐이 천천히 줘도 된다고 했는디요.”
“남의 돈은 천천히 갚는 것이 아니여. 받을 사람이 천천히 받는다고 해도 줄 사람이 언능 줘야제.”
나는 동전을 들고 전빵으로 갔다.
“아짐, 어제 하드 값이요.”
아짐은 동전을 받으며 웃었다.
“워매, 벌써 갖고 와부렀냐잉?”
“엄니가 남의 돈은 언능 갚으라고 했어라우.”
“느그 엄니 참 징허게 똑 부러진당께.”
아짐은 동전을 서랍 안에 넣더니 유리병에서 알사탕 하나를 꺼냈다.
“자, 요것은 심부름값이다잉.”
“돈 갚으러 온 것인디 뭔 심부름값이래요?”
“돈 갖고 오는 것도 심부름이제.”
나는 사탕을 받아 들었다.
빚을 갚았는데 손에는 사탕이 남았다.
우리 동네 전빵에서는 계산이 자주 그렇게 이상해졌다.
돈이 모자라면 물건을 먼저 주었고, 돈을 갚으면 사탕을 더 주었다.
빈 병을 가져가면 동전이 생겼고, 어른 심부름을 하면 과자 부스러기가 따라왔다.
가끔 엄니는 나를 전빵으로 보내며 말했다.
“가서 간장 한 됫박만 받아와라.”
“돈은요?”
“외상으로 달라고 해라.”
“지난번 것도 안 갚았음시롬.”
“아따, 어린것이 별것을 다 잔소리헌다잉. 가서 엄니가 담 장날 준다고 했다고 해라.”
전빵 아짐은 내 말을 듣고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담 장날은 무슨 담 장날이여. 돈 생기면 주라고 하그라.”
그러고는 간장을 병 입구까지 가득 채워주었다.
“쏟지 말고 잘 들고 가라잉.”
외상 장부에는 이름보다 별명이 많았다.
큰길 건너 양철지붕집.
방앗간 순이네.
느티나무 아래 끝집.
서울 간 아들 둔 할매.
주소가 없어도 물건은 제집을 찾아갔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가 성냥을 사러 오면 아짐은 외상 장부에 대신 적었다.
누구 하나 며칠째 전빵에 보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는지 먼저 물었다.
“윗동네 박 서방이 요새 통 안 보이네.”
“몸살 나서 누웠다던디.”
“그라믄 이따가 두유라도 하나 갖다줘야 쓰겄구마아.”
전빵은 물건을 파는 곳이었지만, 동네 사람들의 안부까지 함께 맡고 있었다.
어느 집 제삿날인지, 누구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지, 누가 도시로 돈 벌러 갔는지, 어느 집 아들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는지.
동네 소식은 전빵 평상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일부러 전빵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혹시 심부름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였다.
“아야, 너 마침 잘 왔다잉.”
그 소리가 들리면 발걸음을 멈췄다.
“요것 좀 아랫마을 김 씨 할매한테 갖다드리거라.”
심부름이 끝나면 사탕 하나가 생겼다.
나는 사탕보다 그 말이 더 좋았다.
“너 마침 잘 왔다잉.”
어린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고 고향을 떠났다.
오랜만에 찾아간 동네에는 논둑길이 사라지고 반듯한 도로가 생겨 있었다.
흙길을 달리던 경운기 대신 자동차가 지나갔다.
전빵이 있던 자리에는 녹슨 셔터가 반쯤 내려와 있었다.
해 질 무렵 전라도 시골길의 오래된 상회 앞에서 성인이 된 여성이 녹슨 셔터와 먼지 쌓인 미닫이문을 바라보는 모습.
빛바랜 간판에는 아직 희미하게 ‘○○상회’라는 글자가 남아 있었다.
평상은 사라졌고, 미닫이문 유리에는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드르륵 열면 아짐이 계산대 옆에서 고개를 들 것 같았다.
“왔냐? 도시 가더니 얼굴 보기가 힘들구마.”
나는 대답할 말을 생각해보았다.
잘 지냈다고 해야 할지, 너무 늦게 왔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옆구리 호랑을 뒤져보니 동전 대신 카드와 휴대전화만 잡혔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 동네 전빵에서 외상으로 가져온 것이 하드 하나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곳에서 기다림을 외상으로 가져왔고, 믿음을 외상으로 가져왔다.
돈은 나중에 갚았지만, 사람에게 받은 마음은 장부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돌아서는 길에 나는 닫힌 셔터를 향해 작게 말했다.
“아짐, 나 왔어라우.”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따라오는 듯했다.
“알았응께, 해찰허지 말고 조심히 가라잉.”
나는 그제야 알았다.
전빵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어도,
그곳에서 불러주던 내 이름은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는 것을.
전빵의 문은 닫혔어도, 쉼표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쉼표의 모든 공간 둘러보기
https://link.inpock.co.kr/commajeongseon
… 쉼표JEONGSEON
#우리동네전빵 #전빵 #전라도사투리 #고향이야기 #추억에세이 #시골풍경 #외상장부 #엄니의말 #그때그시절 #사람사는이야기 #감성에세이 #마음기록 #오늘의생각 #온라인카지노작가 #쉼표JEONGSEON #쉼표의정원 #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