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된 글과 살아낸 글, 그 사이에서"
버튼 하나면 글이 나오는 시대다.
주제를 넣으면 서론이 나오고, 톤을 지정하면 문체가 입혀진다. 세상은 이것을 혁명이라 부른다. 나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겼다. 글이 쉬워질수록, 쓰는 사람이 그리워진다는 것.
요즘 '라이팅힙'이라는 말이 돈다. 만년필을 사고, 노트를 펼치고, 필사 모임에 나가는 사람들. AI가 대신 써주는 시대에 굳이 손으로 쓰는 일이 힙한 취향이 되었다니, 처음엔 웃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웃을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의 본질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걸. 문장을 만드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지우는 동안 마음이 걸러진다는 걸. AI는 글을 줄 수 있지만, 그 과정만은 줄 수 없다.
빨래 개는 일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갓 마른 수건을 반듯하게 접다 보면 마음의 주름도 함께 펴지는 순간이 있다. 글쓰기가 내겐 그렇다. 새벽 네 시, 아직 세상이 조용할 때 첫 문장을 놓는 일. 그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세 번을 지우는 일. 그 비효율의 시간이 사실은 나를 살게 한다.
효율의 시대에 비효율을 선택하는 것.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선언이다. 나의 속도로 살겠다는 선언.
앞으로 세상의 글은 두 종류로 나뉠 것이다. 생성된 글과, 살아낸 글. 전자는 매끄럽고 후자는 서툴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언제나 서툰 쪽이었다. 매끄러운 위로보다 더듬거리는 진심이 오래 남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빠르게 쓸 수 있는 시대에, 천천히. 대신 써주는 시대에, 직접.
이 비 오는 새벽,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쓰는 이 글도 그렇다. 어제의 나는 쓸 수 없었고, 내일의 나도 쓸 수 없는 글. 오직 지금의 나만 쓸 수 있는 글. 그것이 내가 아직 손으로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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