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시간, 나를 다시 바라보는 용기
아직도 기억난다. 한 뼘의 콘크리트를 두고 다투던 우리들의 치열함을. 손가락으로 바닥에 금을 긋고, 돌을 튕겨 한 칸이라도 더 차지하려 했던 그 긴장감. 그리고 그때 우리가 불렀던 노래.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아무렇지도 않은 노랫말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놀이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그리고 언제든 찾아올 멈춤. 그 멈춘 자리에서 승패가 갈린다는 것.
우리는 그때 배웠다. 끝없이 확장하려는 욕심과, 그 욕심이 멈춰지는 순간의 떨림을.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알았다.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다만 '땅'이 달라졌을 뿐이다.
더 큰 집, 더 좋은 직함, 더 많은 팔로워, 더 높은 스펙. 우리는 여전히 분주하게 춤을 추고 있다. 손가락으로 땅을 나누던 시절 대신, 이제는 신용카드로, SNS 알고리즘으로, 프로필 사진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확장하려 한다.
국가는 영토를 놓고 싸우고, 회사는 시장 점유율을 놓고 싸운다. 도시의 골목길에서는 주차 공간을 두고 다투고, 카페의 창가 자리는 누군가의 욕망 대상이 된다. 심지어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마저 '차지해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튕겨내며 달린다. 그런데, 이렇게 춤을 추기만 하는 우리는 정말 행복해졌을까?
문제는 "그대로 멈춰라"가 예고 없이 찾아올 때다.
건강을 잃으면 멈춘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면 멈춘다. 예상치 못한 실패가 닥치면 멈춘다. 그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아, 나는 그동안 춤만 추고 있었구나.'
예고 없이 들이닥친 멈춤은 가혹하다. 그래서 우리는 멈추는 법을 점점 잊어간다. 우리에게 멈춤은 낙오이고, 실패이며, 약함이다. 하지만 혹시 모를까. 멈춤이야말로 춤추는 몸이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감지하게 하는, 눈을 열어주는 시간일지도.
어릴 적 '땅 따먹기'의 진짜 재미는 무엇이었을까. 차지하는 것? 아니었다. 그건 단지 놀이의 규칙일 뿐이었다.
진짜 재미는 손가락으로 땅을 나누며 친구들과 나눈 웃음이었고, 어떻게 하면 똑똑하게 내 땅을 지킬지 고민하던 그 순간이었고, 그리고 "그대로 멈춰라!"라는 외침 속에서 그 순간을 영원히 갖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우리가 놓친 건 바로 그것이다. 계속 춤을 추려고만 했지, 멈춘 순간 주변을 바라보는 법을 잊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눈빛을 제대로 본 것이 언제였는가. 내가 일궈낸 것들이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인지 헤아려본 것이 언제였는가. 왜 계속 춤을 추는지, 그 춤의 끝이 어디인지 물어본 것이 언제였는가.
멈춤은 약함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멈춤은 용기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이제 이 노래는 다르게 들린다. 춤도 좋지만, 때로는 멈춰 서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멈춤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
오늘도 누군가는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 무리 속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주말의 오후쯤, 혹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의도적으로 멈춰 서 보자.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것은, 성공의 무게가 아니라 내 폐부를 가득 채우는 서늘하고도 따뜻한 공기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 그 멈춤을 즐거워했다.
지금도 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멈추는 법을.
화려한 도시 야경을 내려다보며 창가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긴 여성의 뒷모습. 복잡한 도로의 불빛이 흐릿한 궤적으로 남고, 테이블 위에는 커피 잔과 작은 돌멩이가 놓여 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휴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오늘 글을 읽고 잠시 멈춰 서서 호흡하셨다면, 그 멈춤의 시간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멈춤의 끝에서 비로소 자라나기 시작하는, 제 또 다른 글 <시간이 만드는 나무>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시간이 만드는 나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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