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짜오'로 열었던 6년,'땀비엣'으로 덮어두기로 했다

상처투성이의 시간을 닫고, 기꺼이 '여백'이라는 비밀병기를 꺼내 든 이유

by쉼표JEONGSEON



"땀 비엣(Tạm biệt), 베트남."

다낭 공항의 습한 밤공기를 뒤로하고 마침내 비행기에 올랐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불빛들을 내려다보며, 입안에서 작게 이별의 인사를 굴려본다.

정확히 6년 전,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채 "씬짜오(Xin chào, 안녕)"를 외치며 이 낯선 땅에 첫발을 내디뎠던 순간이 스쳐 지나간다. 사람들은 타국에서의 삶을 낭만적인 단어들로 쉽게 포장하곤 하지만, 나에게 지난 6년의 시간은 결코 아름다운 한 편의 영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매일매일 숨 막히게 몰아치는 거친 생존기에 가까웠다.

어떤 날은 내 안의 에너지를 120% 끌어다 쓰며 버텼고, 어떤 날은 세상의 부조리함 앞에서 철저하게 부서졌다. 인생이 겪는 고통과 아픔을 모두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에는 그 어떤 수만 가지 단어를 끌어모아도 차마 설명할 수 없는, 철저히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막막한 찰나들이 존재했다. 나는 그 끝자락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놓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억지로 포장하지 않을 용기

한국으로 돌아가는 4시간의 비행 동안, 나는 이 무거웠던 6년의 세월을 어떻게 갈무리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도 배운 게 있었지',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거야'라는 얄팍한 긍정으로 이 시간을 억지로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참 아팠고, 참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6년의 기억들을 무리해서 아름답게 포장하는 대신, 그저 다낭의 짙은 밤하늘 아래 조용히 접어두기로 결심했다.

기억의 서랍을 닫는 것은 회피가 아니다. 그것은 다가올 새로운 삶을 위해 내 안에 '빈자리'를 마련하는 아주 적극적인 의식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덮어둔 아픔이 문득문득 튀어나오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이 먹먹한 짐들을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철저한 진공의 시간을 허락하고 싶다.


6년의 암흑 속에서 벼려낸 '나만의 비밀병기'

비록 상처투성이의 6년이었지만, 그 치열했던 암흑의 시간은 내게 아주 강력한 '비밀병기' 하나를 남겨주었다.

이역만리타국에서 세상의 룰에 이리저리 치이고 깎이면서, 나는 깨달았다. 시스템이 정해준 대로 맹목적으로 끌려다니는 삶의 끝은 결국 철저한 소모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칠흑 같은 밤마다 방구석에 앉아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조용히 나만의 '스텔스 모드'를 켰다.

그것은 바로 '글을 쓰는 것', 그리고 내 삶에 '쉼표(여백)'를 찍는 주도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세상이 나를 소모품으로 대할 때, 나는 활자를 통해 내 삶을 기록하는 '생산자'로 신분을 세탁했다. 누구도 대신 말해주지 않는 뼈아픈 진실들을 글로 써 내려가며, 나는 나를 옭아매던 상처들을 날카로운 통찰로 벼려냈다.

어떤 언어로도 닿을 수 없는 깊은 슬픔과 분노가 차오를 때면, 마침표를 찍고 주저앉는 대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조용히 '쉼표'를 찍었다. 그 여백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속도를 거스르고, 오롯이 내 호흡대로 다음 문장을 이어가겠다는 가장 우아하고 치명적인 반격이었다.


"벼려낸"의 의미

무디어진 연장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다. (예: 칼을 벼리다)

"상처들을 날카로운 통찰로 벼려냈다" (상처라는 무딘 쇳덩이를 두드려 통찰이라는 날카로운 칼로 만들었다)


새로운 문장을 위한 완벽한 여백

이제 한국에 도착하면, 또 다른 형태의 치열한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6년 전의 헐빈했던 내가 아니다. 덮어둔 베트남에서의 시간은 깊은 여백 속에서 조용히 발효되어, 훗날 내가 세상을 향해 던질 또 다른 강력한 문장들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인다. 무거웠던 마음들이 구름 아래로 아득하게 가라앉는다. 지금 이 순간, 내 인생의 노트에는 그 어떤 단어도 적혀있지 않다. 오직 길고 깊은 하나의 쉼표(,)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완벽한 여백 위에서 시작될 나의 다음 문장이, 나는 기꺼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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