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마음을 단단한 문장으로 쌓아 올린 기록들
퇴사 후, 고요한 새벽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노트를 펼치는 것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그저 '처리해야 할 업무 리스트'를 적는 용도였던 펜이, 이제는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무기가 되었다.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혼자 남겨진 시간,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이름의 거대한 불안이다.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방치하면, 불안은 순식간에 내 일상을 덮치고 나를 다시 무기력한 부속품의 자리로 밀어 넣으려 한다.
기록은 무너지는 감정을 붙잡아두는 가장 정직한 물리적 행위다. 나는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불안, 억울함, 막막함 같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들을 잉크로 꾹꾹 눌러 담았다. 처음에는 그저 끄적임에 불과했던 문장들이 한 줄, 두 줄 쌓이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흘러넘치던 감정들이 종이 위에서 형체를 갖추고 멈춰 섰다.
막연했던 두려움은 문장이 되는 순간 객관화된다. '나는 불안하다'라고 적는 것과, '나는 지금 나의 미래가 불투명해서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라고 구체화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며 감정을 굳히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를 괴롭히던 파도 위를 건너갈 수 있는 단단한 징검다리를 하나씩 놓아가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빈 의자에 앉아 성벽을 쌓는다. 세상의 무례한 평가, 타인의 시선, 나를 흔드는 자본주의의 속도 강박 같은 화살들이 날아올 때마다, 나는 나의 기록으로 단단한 성벽을 높인다. 기록은 나에게 있어 '경계선'이다. 여기까지는 나의 영역이고, 저 너머는 내가 바카라임질 필요 없는 타인의 소음이라는 것을 명확히 선을 긋는 작업.
내가 적어 내려간 문장들은 나를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는 철옹성이 된다. 문장이 단단해질수록 나의 중심도 꼿꼿해진다. 오늘 하루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무엇 때문에 흔들렸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 빈 의자를 지키기로 했는지 기록하는 일. 그것은 나를 향한 공격을 방어하는 수단이자,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우아한 방식이다.
기록하지 않는 마음은 쉽게 휘발된다. 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흘러가 버려 정작 내 삶에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다. 하지만 기록하는 삶은 다르다. 아무리 사소한 감정이라도 문장으로 박제해 두면, 그것은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는 내 삶의 자산이 된다.
나는 오늘도 잉크를 묻힌다.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의 조각들을 주워 모아, 나의 성벽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이 성벽이 얼마나 높게, 얼마나 단단하게 완성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이 기록을 통해 어제보다 조금 더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텅 빈 의자 위에서 잉크로 성벽을 쌓는 시간, 그것은 나라는 사람의 세계를 구축하는 가장 맹렬한 사투이자 고귀한 의식이다.
당신의 마음속에 쌓여 있는 감정들은 지금 어떤 형태인가? 흩어져 사라질 연기인가, 아니면 당신을 지키는 단단한 벽돌인가. 오늘 밤, 당신을 가장 괴롭혔던 감정 하나를 골라 노트 위에 정직한 문장으로 적어본다면, 당신의 성벽은 얼마나 더 견고해질까.
쉼표 JEONGSEON의 기록 감정은 휘발되기 쉽지만, 기록된 문장은 영원하다. 무너지는 마음을 잉크로 굳혀 만든 성벽은,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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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파도를 멈추고 고요 속에 뿌리내리는 방법
by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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