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옆에서 온몸으로 배운 언어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나는 베트남어를 전혀 몰랐다. 정말, 단 한 마디도.
인사말 몇 마디조차 제대로 뱉지 못했고, 현지인들이 주고받는 말은 그저 거대한 하나의 '소리 덩어리'처럼 귓가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다정한 인사말도, 서툰 자기소개도 아니었다. 바로 '숫자'였다.
거대한 컨테이너 문이 열리고 묵직한 원단이 하나씩 내려오기 시작하면, 옆에 서 있던 직원들이 목청껏 숫자를 외쳤다.
"못(Một)!" "하이(Hai)!" "바(Ba)!"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리듬으로 듣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숫자가 선명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열, 백, 천…….
그렇게 나의 첫 베트남어 선생님은 사람이 아니라, 컨테이너 박스에서 쏟아져 나오던 원단 뭉치들이었다.
숫자는 생각보다 금방 익혔다. 1부터 10까지만 이해하고 나니 그 뒤를 조합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 사이의 진짜 '대화'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분명 매일같이 마주치며 같은 말을 주고받는 것 같은데, 도무지 그 속뜻을 알 수가 없었다.
특히 내 호기심을 자극했던 한 단어가 있었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입버릇처럼 그 말을 했다.
"조이." "조이……." "조이!"
도대체 '조이'가 뭐길래 저렇게 하루 종일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걸까.
그리고 오늘, 푸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내 그 오랜 비밀의 열쇠를 찾았다. "조이(rồi)"는 베트남어로 '이미', '벌써', '끝났어', '그렇게 되었어'라는 의미를 가진 완료의 문장 부호 같던 말이었다.
그 뜻을 전해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던 오래된 기억 조각들이 한꺼번에 맞춰지기 시작했다. 현장 직원들이 퇴근 무렵이나 작업을 마칠 때마다 외치던 외마디 비명 같던 말.
"쏭조이!"
그동안은 뜻도 모른 채 귀로만 흘렸던 그 소리가 비로소 글자가 되어 눈앞에 선명히 박혔다.
xong(끝나다) + rồi(이미) = "다 끝났어요!"
생각해 보니 베트남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들의 일상 속에서 완료를 선언하고 있었다. 먹었어(rồi), 끝났어(rồi), 도착했어(rồi), 이해했어(rồi), 알았어(rồi)……. 그 모든 대화의 끝에는 늘 '조이'가 찰떡처럼 붙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당연하고도 다정한 사실을 몇 년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물꼬가 트이자 또 하나의 기억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회사 직원들이나 동네 아이들이 나를 볼 때마다 웃으며 건네던 인사말.
"안껌쯔어?"
그동안은 그저 베트남식 인사려니 하며 한 덩어리의 소리로만 넘겼던 단어들이 쪼개져 보이기 시작했다.
ăn cơm(밥 먹다) + chưa(아직? 했어?) = "밥 먹었어?"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안껌조이(Ăn cơm rồi)." 이미 밥 먹었다는 뜻이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몇 년 동안이나 귀를 스쳐 지나갔던 무의미한 소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뚜렷한 의미를 지니고 다가오는 순간은. 마치 눈앞을 가리고 있던 짙은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는 기분이다. 그동안은 그저 낯설고 이질적인 '외국어'에 불과했던 것들이, 이제는 그들의 진짜 '삶과 일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의 발견을 통해 나는 귀중한 진리를 깨달았다. 언어는 꼭 딱딱한 바카라상 앞이나 학원에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 첫 베트남어 선생님은 퀴퀴한 먼지가 날리던 컨테이너 안의 원단이었고, 길을 헤매던 나를 태워다 준 택시 기사님이었으며, 매일 아침 졸린 눈으로 커피를 내려주던 카페 직원이었다. 가끔 속을 썩이며 결근서를 쓰러 오던 직원들마저도 실은 나에게 살아있는 언어를 건네준 선생님들이었다.
나는 그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이 끊임없이 나에게 건네던 삶의 대화들을.
그리고 오늘, 나는 마침내 그들을 향해 마음 깊이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Tôi hiểu rồi (또이 히에우 조이)." 아, 이제야 당신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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