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가 있어야 사람이 들어온다

by진경수

리더의 하루


회의실에 들어갔다. 리더가 앉는 자리는 늘 정해져 있다. 회의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보고가 끝난다. 사람들은 기다린다. 리더가 말한다. 결론이 난다. 어느 날 리더가 그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대표님 의견을 먼저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일정상 결정을 미룰 수 없었다. 팀장들이 의견을 나누었다. 자료를 다시 확인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조정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며칠 뒤 리더가 결과를 보고받는다. 생각보다 잘되어 있다. 조금 섭섭하면서도 묘한 기쁨이 생긴다. 내가 빠진 자리에 혼란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판단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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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경』 제11장은 ‘있음’과 ‘없음’을 아름답게 대비한다. 수레바퀴의 서른 개 살은 가운데 빈 축을 중심으로 모이고,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지만 실제로 그릇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안의 빈 공간이다. 문과 창을 내어 방을 만들지만 방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그 비어 있는 공간 덕분이다. 노자는 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있는 것은 이로움을 만들고, 없는 것은 쓰임을 만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참 아름다운 역설이다. 쓸모가 있는 것은 채워진 것만이 아니다. 비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쓸모도 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읽는다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자꾸 채우려고 한다. 규정을 만들고, 보고체계를 만들고, 회의를 늘리고, 점검표를 만들고, 결재선을 만든다. 빈틈이 없어야 잘 관리되는 조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더 자신의 일정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회의로 가득하다. 모든 중요한 일에 관여한다. 모든 보고를 받는다. 그런데 모든 자리를 리더가 채우면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제11장을 읽으며 나는 조직에도 ‘빈 그릇’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판단할 자리, 실수해 볼 자리, 새로운 방법을 제안할 자리, 다음 세대가 바카라임을 맡아볼 자리다. 리더의 빈자리는 공백이 아니다 리더가 빠지면 처음에는 일이 느려질 수 있다.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동안 리더가 해주던 결정을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조직의 근육이 생긴다. 서로 묻고, 자료를 찾아보고, 바카라임 범위를 확인하며, 결정을 내린다. 따라서 좋은 빈자리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의 판단이 들어올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비워둔 공간이다.


리더가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주인을 초대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후계자는 빈자리에서 자란다 후계자를 키운다고 말하면서 정작 중요한 자리를 모두 리더가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중요한 고객은 내가 만나고, 큰 계약은 내가 결정하고, 핵심 회의는 내가 주재하며, 대외 발표도 내가 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왜 후배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되었을까?”


어쩌면 준비할 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은 바카라으로만 리더가 되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보아야 그 자리의 무게를 배운다. 결정해 보고, 실수해 보고, 바카라임져보아야 한다. 그래서 후계자를 키우는 일은 무엇인가를 더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 하나를 비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여백 없는 조직은 숨이 차다 문서에도 여백이 있어야 글이 읽힌다. 음악에도 쉼표가 있어야 다음 음이 살아난다. 산길에도 잠시 숨을 고르는 평지가 있어야 먼 길을 갈 수 있다.


조직도 그렇다. 매 순간 목표, 성과, 보고, 회의, 점검으로 꽉 채우면 사람은 생각할 틈을 잃는다. 창의성은 명령과 명령 사이의 작은 틈에서 태어날 때가 있다. 그래서 리더는 업무만 배분할 것이 아니라 생각할 여백도 남겨주어야 한다.



내가 리더라면


내가 참석하는 회의 가운데 하나를 골라보자. 정말 내가 있어야 하는가. 내가 빠지면 누가 그 자리에 들어올 수 있을까. 또 내가 가지고 있는 결정권 가운데 하나를 살펴보자. 이제 다른 사람이 판단해도 되는 일은 없는가. 빈자리를 만드는 것은 리더의 역할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리더의 역할을 다음 단계로 옮기는 일이다.



리더에게 묻는다


내가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는 자리는 없는가?

조직에는 실수하고 생각할 여백이 있는가?



한 문장으로 남기는 노자 리더십


리더가 모든 자리를 채우면 사람은 머물 곳을 잃고, 리더가 한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는 그곳에서 자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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