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by진경수

리더의 하루


젊은 팀장이 보고서를 가져왔다. 중요한 사업제안서다. 몇 장을 넘겨보니 고칠 곳이 눈에 들어온다. 문장의 순서도 바꾸고 싶고, 도표도 다듬고 싶다. 무엇보다 결론 부분은 리더가 직접 쓰면 훨씬 명확해질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말했다.


“이리 줘봐요. 내가 한번 고쳐볼게요.”


그리고 밤에 직접 수정했을 것이다. 다음 날이면 훨씬 나은 보고서가 완성된다. 일은 빨리 끝난다. 그런데 문득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다음 보고서는 누가 쓰게 될까?’


리더는 펜을 내려놓는다. 대신 묻는다.


“이 보고서에서 당신이 가장 전달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팀장이 설명한다.


“그렇다면 지금 결론에서 그 내용이 충분히 보입니까?”


잠시 침묵한다. 팀장이 다시 보고서를 들여다본다.


“아닙니다. 다시 써보겠습니다.”


리더는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답을 주지 않았다. 며칠 뒤 훨씬 좋아진 보고서가 돌아왔다. 그날 리더가 한 일은 적었다. 그러나 직원이 한 생각은 많았다.



09.jpeg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경』 제37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道常無爲, 而無不爲 (도상무위 이무불위)

도는 언제나 무위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처음 접하면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 않는데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니. 하지만 노자의 무위(無爲)는 단순한 무행동과는 다르다. 억지로 개입하고 조작하고 끌어당기려는 인위적 행위를 줄이는 데 가깝다. 나는 이것을 리더십의 언어로 이렇게 읽고 싶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하지 않는 것.”


리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리더만이 해야 하는 일과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구별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읽는다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기다리는 것이다. 답이 보이기 때문이다. 직원이 한참 고민하는 문제도 리더에게는 이미 경험해 본 일일 수 있다.


“그건 이렇게 하면 돼.”


한마디면 끝난다. 직원은 고마워한다. 문제도 빨리 해결된다. 그런데 이 일이 반복되면 직원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습관이 만들어진다.


‘어려우면 위에 물어보면 된다.’


처음에는 질문이지만 나중에는 의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리더가 묻는다.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직원은 처음에는 답답할 수 있다.


‘알면서 왜 안 알려주지?’


하지만 스스로 자료를 찾고, 대안을 만들고, 판단하면서 조금씩 자기 안에 답을 만드는 힘이 생긴다. 사람을 키우는 데에는 답을 주는 시간보다 답을 기다려주는 시간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리더의 친절이 사람을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리더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이유가 언제나 권력욕 때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카라임감이 강해서 그럴 때가 많다. 직원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도와주고 싶다. 실패할 것 같으면 미리 막아주고 싶다.


일정이 늦어질 것 같으면 직접 뛰어들고 싶다. 선의다. 그러나 선의에도 그늘이 있다. 계속 대신해 주면 사람은 자신의 판단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경험할 수 없다. 넘어질 것 같을 때마다 손을 잡아주면 넘어지지는 않지만 균형 잡는 법도 배우기 어렵다. 리더의 도움에는 그래서 경계선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도와주는 것이 이 사람을 성장시키는가.’


아니면


‘내가 불안해서 대신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무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쉬울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어렵다. 특히 결과에 대한 바카라임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직원이 회의를 진행하는데 조금 서툴다. 내가 끼어들면 바로 정리할 수 있다. 그래도 기다린다. 후배가 고객에게 설명하다가 잠시 막힌다. 내가 대신 말하고 싶다. 그래도 조금 기다린다. 그 몇 초가 리더에게는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후배는 자기 언어를 찾는다. 그래서 무위는 소극적인 태도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자신의 개입 욕구를 견디는 능력이기도 하다. 산길에서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여럿이 산을 오르다 보면 걸음이 빠른 사람이 있다. 앞에서 기다리다가 답답한 마음에 재촉한다.


“조금만 빨리 옵시다.”


그러면 뒤의 사람은 자기 호흡을 잃는다. 산에서는 남의 속도로 오래 걷기 어렵다. 자기 보폭을 찾아야 한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경험과 속도를 기준으로 사람을 끌어올리려고 하면 구성원은 잠시 따라올 수 있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걷는 법을 배우지는 못한다. 때로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앞에서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다. 조금 앞에서 기다려주는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호흡으로 정상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지 않음에도 기준은 있어야 한다


무위를 방임과 구별하는 중요한 지점이 있다. 리더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기준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목표는 무엇인지, 품질의 기준은 어디까지인지, 절대로 넘어서서는 안 되는 선은 무엇인지,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지는 분명해야 한다. 그 안에서 사람에게 방법을 맡기는 것이다. “이 일을 이렇게 하세요”가 아니라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은 여기입니다. 방법은 당신이 찾아보세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통제는 줄이고 기준은 선명하게 하는 것. 그것이 현대 조직에서 무위를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리더가 빠지기 쉬운 함정


무위라는 말은 리더에게 편리한 변명이 될 수도 있다.


“알아서 하세요.”

“나는 직원들을 믿습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필요한 자원도 주지 않고, 방향도 알려주지 않으며, 문제가 생기면 바카라임만 묻는다면 그것은 무위가 아니다. 방임이다. 무위의 리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을 준비시키고, 기준을 세우고, 정보가 흐르게 하며, 필요한 자원을 마련하고,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은 막아준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을 때 손을 뗀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리더십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한 뒤 불필요하게 더 하지 않는 리더십이다.



내가 리더라면


다음에 누군가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면 바로 답하지 않아 보자. 먼저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까?”


대안이 없다면 하나를 더 묻는다.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고 다시 이야기해 볼까요?”


그리고 기다린다. 리더가 답을 5분 늦게 말함으로써 누군가는 평생 사용할 판단력 하나를 배울 수도 있다.



리더에게 묻는다


나는 사람들이 묻기도 전에 답부터 주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해결해 주기 때문에 반복해서 나를 찾아오는 문제는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남기는 노자 리더십


무위의 리더는 손을 놓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 손을 떼어야 사람이 자라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이전 09화리더의 말보다 조직의 목소리가 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