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준비한 사업이 마침내 성공했다. 직원들의 얼굴이 밝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밤늦게까지 자료를 수정했고,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누군가 리더에게 말한다.
“대표님이 끝까지 밀어붙이셔서 가능했습니다.”
기분 좋은 말이다. 리더가 아니었다면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잠시 주변을 바라본다. 기술을 개발한 사람, 고객을 설득한 사람, 현장에서 밤을 새운 사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뒤를 받친 사람들이 보인다. 그 순간 리더에게 선택이 생긴다. 성과의 중앙으로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한 걸음 비켜설 것인가. 노자는 후자를 말한다.
『도덕경』 제2장에서 노자는 성인의 모습을 이렇게 그린다.
萬物作而弗始, 生而弗有, (만물작이불시, 생이불유)
爲而弗恃, 功成而弗居.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만물이 일어나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낳아도 소유하지 않으며,
행하고도 그것에 기대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그 공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이 더욱 인상적이다.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바로 그 공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 공이 떠나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노자는 성과를 이루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이루어라. 다만 그 성과를 자기 자리로 만들지는 말라.
리더에게 성과는 중요하다. 좋은 뜻만으로 조직을 이끌 수는 없다.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고객의 신뢰를 얻어야 하며, 회사는 지속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노자의 功成(공성)에서 ‘功’도 중요하다. 공을 이루어야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而弗居(이불거).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성공을 자신의 신분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 회사를 만들었다.”
“내가 이 사업을 성공시켰다.”
“내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처음에는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을 오래 붙잡으면 과거의 공이 현재의 권리가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과거의 성공이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된다. 노자는 바로 그것을 경계하는 듯하다. 성과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직의 성과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사람의 이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계약서에 서명한 사람은 한 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약을 위해 수많은 손이 움직였다.
누군가는 설계했고, 누군가는 제작했으며, 누군가는 품질을 확인했고, 누군가는 고객의 불만을 받아냈다. 청소하고, 운반하고, 기록하고, 연락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몫을 해낸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리더가 성과를 자기 이름으로 가져오는 순간 수많은 이름 없는 손이 지워질 수 있다. 좋은 리더는 그 손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내 덕분”보다 “당신 덕분”
성과가 났을 때 리더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가운데 하나는 공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자신에게 들어온 칭찬을 사람에게 돌려보내는 것이다.
“현장에서 고생한 사람들이 해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젊은 직원에게서 나왔습니다.”
“이번 일은 생산팀이 끝까지 바카라임져주었습니다.”
이런 말은 겸손을 보여주기 위한 수사가 아니다. 조직에 중요한 메시지를 보낸다. 이곳에서는 기여한 사람이 인정받는다는 메시지다. 그 믿음이 생기면 사람은 다음 일에서 조금 더 바카라임지고 싶어진다. 공을 나누면 권위가 줄어들까 일부 리더는 걱정할 수 있다.
‘내가 계속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면 내 역할은 누가 알아줄까.’
그러나 조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본다. 어려운 순간에 누가 결정했는지, 누가 바카라임졌는지, 누가 사람을 지켜주었는지 기억한다. 오히려 모든 공을 스스로 설명하려 할수록 권위가 작아질 수 있다. 노자의 夫唯弗居 是以不去(부유불거 시이불거)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머물지 않기에 오히려 떠나지 않는다. 자기 이름을 새기려고 애쓴 사람보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러준 리더가 사람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는 역설이다. 리더의 이름이 사라져도 방식은 남는다
좋은 리더십의 흔적은 명패에만 남지 않는다. 리더가 떠난 뒤에도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숨기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실패했다고 사람부터 탓하지 않습니다.”
“성과는 함께 나눕니다.”
“후배에게 기회를 줍니다.”
그것이 문화다. 리더의 이름은 조직도에서 사라졌지만 그가 사람을 대하던 방식은 조직의 습관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공에 머물지 않지만 공이 떠나지 않는’ 현대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성공이 오늘의 자리가 되지 않게 하라
성과에는 또 하나의 함정이 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근거로 현재의 결정권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질 수 있다.
“내가 이 사업을 처음 만들었으니 내가 가장 잘 안다.”
하지만 조직은 계속 변한다. 어제의 성공을 만든 사람이 오늘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공이 오늘의 모든 판단을 독점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공을 이루고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의 성공에서조차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성공을 훈장처럼 가슴에 붙이는 대신 다음 사람의 출발점으로 내어주는 것이다. 산 정상에 집을 짓지 않는 이유 산을 오르면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힘들게 올라왔으니 잠시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아무도 정상에 집을 짓지는 않는다. 머물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바라보고, 함께 오른 사람과 기쁨을 나눈 뒤, 다시 내려간다. 성과도 그런 것이 아닐까. 정상은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곳이지 영원히 차지하는 곳은 아니다. 오늘의 성과를 충분히 기뻐하되 그곳에 자기 정체성을 묶어두지 않는 것. 그래야 다시 배울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길을 내어줄 수 있다.
공을 내세우지 않는다고 성과를 평가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누가 무엇에 기여했는지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성과에 따른 보상도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했다’는 말로 실제 기여한 사람의 공까지 흐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노자의 弗居(불거)는 성과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개인의 소유물과 권력의 근거로 붙잡지 않는 태도로 읽는 것이 좋다. 그래서 좋은 리더는 공을 독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공을 제대로 찾아 돌려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음에 좋은 성과가 나오면 먼저 물어보자.
“이 일에서 내가 아직 이름을 불러주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가?”
눈에 잘 띄는 사람만이 아니라 뒤에서 묵묵히 일한 사람까지 찾아보자. 그리고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자신의 역할보다 사람들의 기여를 먼저 말해보자. 작은 변화지만 조직은 기억한다.
나는 성공을 이야기할 때 누구의 이름을 가장 먼저 말하는가?
과거의 성과를 현재의 권한을 지키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공을 움켜쥐면 성과는 한 사람의 것이 되지만, 공을 나누면 성과는 조직의 힘이 된다. 뒤에 서고, 공에서 떠난다는 것 제66장의 欲先民 必以身後之(욕선민 필이신후지)와 제2장의 功成而弗居(공성불이거)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사람을 앞으로 보내고, 성과가 나면 그 공에서도 한 걸음 물러서는 것. 말로는 쉬워 보인다. 하지만 리더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리는 사람을 앞에 서게 하고, 성공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낮아짐에는 의식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말할 수 있지만 한 번 더 듣고, 내가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내가 받을 수 있는 박수를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고, 내가 없어도 되는 자리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 그 과정에서 리더의 존재감은 겉으로 작아질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의 힘은 커진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노자에게 배우는 리더십』이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역설이 있다. 나를 크게 만드는 리더십은 나에게 사람을 모으지만, 사람을 크게 만드는 리더십은 내가 없어도 조직을 움직이게 한다.
어쩌면 리더의 가장 아름다운 성공은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자신을 찾게 만드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중요한 일이 생겼는데도 사람들이 먼저 서로 의논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바카라임 있게 일을 끝내는 것. 그리고 리더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저희가 해냈습니다.”
그 말을 기쁘게 들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이미 앞에 있으면서도 사람 뒤에 설 줄 아는 리더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