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산행의 하산길이었다. 각자의 물이 거의 바닥났다. 누군가는 조금 남아 있었고, 누군가는 이미 다 마셨다. 한 사람이 배낭에서 물병을 꺼냈다. 자신도 목이 말랐을 것이다. 그런데 먼저 물었다.
“물 없는 분 계세요?”
누군가 손을 들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물을 건넸다. 아주 작은 장면이었다. 누가 칭찬하지도 않았고 사진으로 남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는 일. 노자가 말한 하늘의 도를 읽을 때 나는 가끔 그런 장면을 떠올린다.
하늘은 활시위를 당기듯 균형을 잡는다
『도덕경』 제77장은 활을 당기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天之道, 其猶張弓與. (천지도 기유장궁여)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리고 이어 말한다.
高者抑之, 下者擧之; (고자억지, 하자거지)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유여자손지, 부족자보지)
높은 것은 낮추고 낮은 것은 들어 올리며, 남는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보탠다.
그리고 노자는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천지도, 손유여이보부족)
하늘의 도는 남는 곳에서 덜어 부족한 곳을 보탠다.
참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러나 노자는 곧 현실을 바라본다. 사람의 세상은 오히려 부족한 곳에서 덜어 이미 넉넉한 곳에 더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수천 년 전의 문장인데도 묘하게 오늘의 조직을 돌아보게 한다. 조직에서 기회는 어디로 흐르는가 성과가 좋은 사람에게 좋은 기회가 간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한 사람에게 더 큰 프로젝트를 맡긴다.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되면 한쪽에는 경험이 계속 쌓이고 다른 쪽에는 경험할 기회조차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게 되고, 아직 부족한 사람은 계속 부족한 상태에 머문다. 리더는 가끔 물어야 한다.
“우리 조직에서 기회는 이미 가진 사람에게만 흐르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것을 똑같이 나누라는 뜻은 아니다. 바카라임과 능력에 맞는 배분은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을 키우려면 지금의 능력만이 아니라 앞으로 자랄 가능성에 투자하는 몫도 있어야 한다.
부족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통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일이 서툰 직원이 있다. 리더는 불안하다. 그래서 더 자주 보고하게 하고, 더 세세하게 지시하고, 결정권을 줄인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부족했던 것이 더 부족해질 수 있다. 경험과 판단의 기회다.
반대로 이미 잘하는 사람에게는 자유를 많이 준다. 그 사람은 더 많은 판단을 경험하고 더 빠르게 성장한다. 그렇게 조직 안의 격차가 스스로 커질 수도 있다.
제77장의 補不足(보부족)을 사람의 성장에 적용해 보면 질문이 달라진다. 부족한 사람에게 무엇을 더 주어야 할까. 질바카라이 아니라 교육일 수도 있다. 감시가 아니라 작은 결정권일 수도 있다. 정답이 아니라 한 번의 기회일 수도 있다.
리더에게 남는 것이 있다면 오래 조직을 이끌다 보면 리더에게 여러 가지가 쌓인다. 경험이 쌓인다. 사람이 쌓인다. 관계가 쌓인다. 판단의 감각도 쌓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새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된다. 그때 질문이 생긴다.
“이것을 어디에 쓸 것인가?”
나의 위치를 지키는 데 쓸 수도 있다. 내 이름을 더 높이는 데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선택도 있다. 내가 가진 경험을 젊은 사람에게 건네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다음 세대와 연결하며, 내가 얻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내게 쌓였던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능성으로 옮겨간다.
리더의 몫을 조금 덜어내는 일
노자의 損有餘(손유여)를 읽으며 나는 ‘덜어낸다’는 말에 주목한다. 남는 것을 모두 버리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덜어낸다. 내가 말할 시간을 조금 덜어 젊은 사람에게 발언권을 준다. 내가 받을 공을 조금 덜어 팀의 이름을 앞세운다. 내가 쥔 결정권을 조금 덜어 다음 리더에게 건넨다. 내가 가진 관계의 중심을 조금 덜어 후계자에게 연결한다. 이 작은 덜어냄들이 쌓이면 다른 사람의 자리가 넓어진다. 내가 조금 작아졌는데 누군가가 조금 커지는 것. 그것은 손해가 아니라 이어 짐이다.
공정함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하며, 누군가에게는 냉정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한 번 더 믿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리더의 공정함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 몫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물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이미 충분히 젖은 곳과 메마른 곳에는 필요한 물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공한 리더에게는 돌려줄 것이 있다
젊었을 때는 세상에서 받으려고 했다. 기회를 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성과를 얻고 싶었다. 그 마음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나이에 이르면 질문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이제 나는 무엇을 받을 것인가?”에서
“내가 받은 것 가운데 무엇을 다시 건넬 것인가?”
로. 어쩌면 삶의 전반부가 채우는 시간이었다면 후반부에는 잘 건네는 공부도 필요하다. 지식도, 경험도, 자리도, 기회도, 그리고 사람에게 받았던 마음도.
쌓아둔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
평생 모은 것들도 언젠가는 내 손을 떠난다. 돈도, 직바카라도, 회사도, 명예도 그렇다. 아무리 단단히 쥐어도 마지막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건넨 것은 남는다. 내가 가르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 내가 기회를 준 사람이 후배에게 기회를 준다. 내가 어려울 때 받았던 배려를 기억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이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며 오래 살아남는다. 그래서 사람의 삶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소유한 것이 아니라 흘려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산에서 가져오는 것은 많지 않다 산에 올랐다 내려오면 손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돌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고, 나무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사진 몇 장이 남고 기억이 남는다.
그런데 오래 남는 것은 의외로 사람이다. 힘든 오르막에서 기다려준 사람, 넘어질 때 팔을 잡아준 사람, 정상에서 함께 웃었던 사람. 산을 내려온 뒤에도 그 순간은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산행을 마칠 때마다 생각한다. 정상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보다 누구와 함께 내려왔는가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리더의 길도 결국 그렇지 않을까.
지금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진 것을 세 가지 적어보자.
경험일 수도 있다.
기회일 수도 있다.
인맥이나 지식, 시간, 권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각각의 옆에 사람 이름 하나를 적어보자.
“이것을 누구에게 건넬 것인가?”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부터 조금씩 건네보자. 내 손에 있을 때 건네야 그것이 선물이 된다.
우리 조직의 좋은 기회는 늘 같은 사람에게만 돌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부족한 사람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기보다 부족함을 탓하고 있지는 않은가?
리더가 가진 것은 움켜쥘 때 그의 것이지만, 건네는 순간 조직의 미래가 된다. 두 장을 지나며 장부를 내려놓고 손을 내미는 일 36장에서는 마음속 장부를 내려놓는 이야기를 했다. 37장에서는 내게 남는 것을 부족한 곳으로 건네는 이야기를 했다. 하나는 놓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주는 일이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 보면 둘은 같은 방향을 향한다. 손을 펴는 것이다. 미움을 움켜쥔 손을 펴고, 공을 움켜쥔 손을 펴고, 권한을 움켜쥔 손을 펴고, 내가 쌓아온 경험과 기회를 움켜쥔 손도 편다. 손을 펴면 가지고 있던 것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그 손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다. 리더십의 마지막 모습은 어쩌면 꽉 쥔 주먹이 아니라 펼쳐진 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