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용한 사무실 바카라상 서랍을 정리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열어보니 쓰지 않는 명함, 오래된 수첩, 케이블, 몇 년 전 회의자료, 어디에 쓰는지조차 모르는 열쇠까지 나왔다. 버리려다가도 손이 멈춘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다시 넣는다. 조직도 이 서랍과 닮았다. 회의 하나가 생기고, 보고서 하나가 늘고, 결재 단계가 하나 더해진다. 누군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규정을 하나 만든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더하는 사람은 많아도 없애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조직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복잡해진다.
樸(박), 아직 다듬지 않은 나무
노자는 여러 장에서 樸, 박을 말한다. 樸은 아직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은 통나무, 꾸밈이 덧붙기 전의 소박한 상태를 가리킨다.
『도덕경』 제32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道常無名, 樸. (도상무명, 박)
도는 늘 이름 없는 박과 같다고 한다.
제28장에서는
復歸於樸. (복귀어박)
다시 박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이를 오늘의 조직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나는 여기에서 본래의 목적을 가리고 있는 덧붙임을 걷어내는 경영을 떠올린다. 조직은 성장하면서 계속 옷을 입는다. 직급이라는 옷, 규정이라는 옷, 보고라는 옷, 회의와 평가라는 옷. 필요한 옷도 많다. 하지만 너무 많이 입으면 몸을 움직이기 어렵다. 그때 필요한 질문이 있다.
“이것이 없으면 정말 일을 할 수 없는가?”
복잡함은 능력처럼 보인다
두꺼운 보고서는 왠지 전문적으로 보인다. 회의 참석자가 많으면 중요한 회의처럼 느껴진다. 결재 단계가 많으면 관리가 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복잡하다는 것과 정교하다는 것은 다르다. 좋은 시스템은 사람이 시스템을 의식하지 않아도 일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한다. 반대로 좋지 않은 시스템은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사람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다.
직원이 고객에게 쓸 시간보다 내부 보고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면, 현장을 개선하는 시간보다 회의자료를 만드는 시간이 더 길다면, 리더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일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규정 하나에는 비용이 숨어 있다
문제가 생기면 규정을 만드는 것은 쉽다. 사고가 한 번 발생한다.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다른 문제가 생긴다. 결재를 하나 추가한다. 그 순간에는 합리적이다. 하지만 규정 하나가 10년 동안 수십 명, 수백 명에게 반복 적용된다면 그 비용은 작지 않다. 그래서 규정을 만들 때에는 추가의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수명도 함께 정해야 한다.
“이 제도는 1년 뒤 다시 검토한다.”
그 한 줄만 있어도 조직의 서랍에는 필요 없는 규정이 덜 쌓인다.
단순함은 적음이 아니라 선명함이다
간결한 조직을 무조건 규정이 적은 조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안전과 품질처럼 세밀한 절차가 필요한 영역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개수가 아니라 목적이 선명한가이다. 왜 이 회의를 하는가. 왜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가. 왜 이 결재가 필요한가. 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남겨야 한다. 답할 수 없다면 다시 살펴봐야 한다.
단순함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중요한 것을 가리지 않는 상태다. 리더의 말부터 간결해야 한다 조직의 복잡함은 제도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리더의 말에서도 생긴다. 지시를 너무 많이 하고, 회의 때마다 우선순위를 바꾸며, 모든 문제에 의견을 보태면 직원은 무엇이 중요한지 알기 어려워진다. 리더가 열 가지를 강조하면 사실상 아무것도 강조하지 않은 것과 비슷해질 수 있다. 그래서 리더 자신에게도 덜어냄이 필요하다.
“이번 달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세 가지는 무엇인가?”
그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리더는 많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 사람들이 알게 하는 사람이다.
회의 하나를 골라 질문해 보자. 이 회의를 오늘 처음 제안받는다면 나는 새로 만들겠는가? 보고서 하나에도 같은 질문을 해보자. 그리고 규정 하나에도 물어보자. 과거에 필요했다는 이유가 아니라 지금도 필요한가를 묻는 것이다. 오래된 조직을 새롭게 만드는 방법은 새로운 것을 더하는 데만 있지 않다. 오래된 불필요함을 걷어내는 데도 있다.
우리 조직에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절차가 얼마나 있는가?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새로운 규정을 더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지는 않은가?
단순한 조직은 할 일이 없는 조직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 누구나 알고 있는 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