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구경 있습니다

카를로비바리에서 놓친 한 장면

by박계장

체코 카를로비바리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박팀장 일행은 온천수의 수질과 위생관리, 관광객 이용 실태를 살펴보는 정바카라연수 일정을 마쳤다. 오후에는 온천수가 실제 관광자원으로 어떻게 활용되는지 직접 보기 위해 사우니아 테르말 리조트로 향했다.


일행은 박팀장과 이팀장, 정주무관, 차주무관이었다. 이팀장은 박팀장과 오래 알고 지낸 온라인 게임 친구였고, 정주무관 역시 십여 년 전 같은 부서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었다. 차주무관은 이번 연수를 준비하면서 가까워진 후배였다.


야외 수영장은 언덕 위에 있었다. 물에 몸을 담근 채 가장자리로 가면 붉은 지붕과 크림색 건물들이 계곡을 따라 내려다보였다. 그 뒤로 나무가 우거진 산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었다. 물도 30℃가 조금 넘는 미지근한 정도의 온천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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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팀장은 한동안 풍경을 바라보다 물 위를 내려다봤다.


허연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물결을 따라 모였다가 흩어졌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그의 눈에는 목욕탕 물 위에 떠다니는 때처럼 보였다. 한국의 목욕탕이나 수영장이라면 물 속에 들어가기 전에 몸부터 씻을 텐데, 이곳 사람들은 샤워를 하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듯했다.


박팀장은 손으로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슬쩍 옆으로 밀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물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네 사람은 이내 수영장을 오갔다. 물속은 따뜻했고 어깨를 내놓으면 초가을의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물 위만 너무 자세히 보지 않으면 꽤 괜찮았다.


수영을 마친 뒤에는 사우나로 옮겼다. 여러 층에 걸쳐 크고 작은 사우나실이 있었고, 나무문마다 온도와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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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함께 이용하는 공용 사우나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입구에서 큰 목욕 타월을 하나씩 받았고 네 사람은 자연스럽게 몸에 둘렀다. 박팀장은 그것이 이곳의 규칙이라고 생각했다.


박팀장과 이팀장은 한 건식 사우나실에 들어갔다. 문을 닫자 마른 열기가 얼굴과 목을 덮쳤다. 나무 벽과 긴 벤치에서는 달궈진 나무 냄새가 났다.


박팀장은 원래 사우나를 오래 견디지 못했다. 조금만 앉아 있어도 콧속이 따갑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까지 뜨거웠다.


정주무관과 차주무관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앉아 있었지만 두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박팀장이 그들을 찾아 결국 밖으로 나왔다. 큰 타월을 몸에 두른 채 복도를 따라 한 층을 올라갔다. 그래도 보이지 않아 다시 위층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차주무관을 만났다.


차주무관은 박팀장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 좋은 구경 있습니다.”


박팀장은 그 말을 별다른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느 사우나실에 특별한 그림이나 장식이 있나 싶었다.

차주무관은 앞장서서 한 사우나실 앞에 멈췄다.


“여기 한번 들어가 보십시오.”


박팀장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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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끈한 열기와 수증기가 얼굴로 밀려왔다. 안쪽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사람의 형체가 있었는지도 그는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벽에는 그림도 보이지 않았고 눈에 띄는 장식도 없었다.


무엇보다 너무 뜨거웠다. 이미 여러 사우나실을 드나든 뒤라 안으로 더 들어가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몇 초쯤 서 있었을까.


박팀장은 문을 닫았다.


“뭐 별것도 없구만.”


그대로 돌아섰다.


차주무관이 무슨 말을 더 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았다.


박팀장은 이제 사우나보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오전에 지나쳤던 드보르자크 공원이 생각났다. 큰 나무 아래 벤치가 있었고 사람들 오가는 모습을 보기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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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서늘한 바람이 달아오른 얼굴에 닿았다. 그는 천천히 공원으로 내려가 빈 벤치 하나에 앉았다.


테플라천 주변으로 사람들이 계속 오갔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으며 걸었고, 개를 데리고 산바카라하는 사람들도 지나갔다.


조금 뒤 가까운 벤치에 현지 여학생 몇 명이 자리를 잡았다. 손에는 먹을 것이 들려 있었다. 한 아이가 말을 하면 다른 아이가 웃었고, 또 다른 아이가 끼어들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음식을 나눠 먹으며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박팀장은 등을 벤치에 기대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사우나 안에 있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한참 뒤 일행들과 다시 만났을 때, 세 사람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우나 열기 탓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서로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박팀장은 자신이 한 시간 전 열었던 사우나실 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차주무관이 말한 ‘좋은 구경’은 그림이나 장식이 아니었다. 그 방에는 여자 이용객들이 있었고, 모두 타올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박팀장은 잠시 말을 잃었다.


자기가 열었던 문과 뿌연 수증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벽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가 왜 그런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자 차주무관은 자신은 분명 좋은 구경이 있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박팀장에게는 그 설명이 못내 아쉬웠다.


차주무관은 일행 중 가장 어렸고 두 팀장과는 이번 연수를 준비하면서 가까워진 사이였다. 아마도 그런 관계가 조금은 작용했을 것이다. 팀장에게 대놓고 “안에 여자들이 다 벗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머뭇거렸을지도 몰랐다.


그 얘기를 듣던 정주무관이 옆에서 웃었다.


정주무관은 달랐다. 박팀장이 구청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던 십여 년 전부터 함께 일해온 후배였고, 지금도 만나면 격의 없이 농담을 던지는 사이였다.


일행들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두고두고 말했다.


그 자리에 차주무관이 아니라 정주무관이 있었으면 박팀장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을 거라고.


정주무관이라면 아마 에둘러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구경이 있다는 식으로 암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팀장이 알아들을 수 있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로 말했을 사람이었다.


박팀장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그날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또 있었다. 큰 타월은 반드시 몸을 가리라고 준 것이 아니었다. 필요하면 몸에 두르기도 했지만 사우나실에서는 벤치에 깔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에서는 남녀가 함께 사우나를 이용하는 것뿐 아니라 타올을 두르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박팀장이 혼자 공원으로 나온 뒤, 남아 있던 세 사람은 현지 사람들의 방식에 금세 익숙해졌다고 했다.

이팀장도, 정주무관도, 차주무관도 그들처럼 타월을 벗고 사우나를 이용했다는 것이었다.


박팀장은 한동안 그 이야기를 믿기 어려워했다. 자기는 큰 타월을 몸에 둘둘 두른 채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문까지 직접 열어놓고도 아무것도 못 보고 나왔다.


그날 이후 ‘좋은 구경’ 이야기는 여행 내내 따라다녔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식당에 앉아 있을 때도, 누군가 한 번씩 그 일을 꺼냈다. 차주무관은 자기는 분명히 알려줬다고 했고, 박팀장은 그걸 설명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맞섰다.


그럴 때마다 정주무관이 끼어들었다.


자기였다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일행들도 대체로 그쪽에 동의했다.


차주무관은 점점 억울하다는 표정을 덜 지었다. 여행 마지막쯤에는 자신은 할 말을 다 했고, 박팀장이 잘못 알아들은 것이라는 쪽으로 태도가 굳어 있었다.


박팀장은 그래도 아쉬워했다.


물론 그것이 정말 그렇게 아쉬운 일이었는지는 아무도 따져 묻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사진을 넘길 때마다 박팀장은 카를로비바리의 풍경보다 사진에 없는 장면 하나를 더 자주 떠올렸다.


두 층 위 사우나 복도에서 큰 타월을 두른 자신을 보며 웃던 차주무관의 얼굴과 그때의 말이었다.


“팀장님, 좋은 구경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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