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과열 시동 끔

평온한 가을날, 15년 된 차가 멈춰 세운 하루

by박계장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온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계기판에 "엔진 과열 시동 끔"이라는 문구와 경고 아이콘이 떴다. 경고 문구를 제대로 확인할 겨를도 없이 보닛 쪽으로 눈이 갔다. 보닛과 차체 사이 틈으로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차 안에는 무언가가 탈 때 나는 냄새도 번졌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보닛 안에서 불이라도 붙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 뒤 밖으로 나왔다. 보닛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얼굴 쪽으로 올라왔다. 냉각수 통은 비어 있었다. 엔진 쪽에서는 ‘치지직’ 하는 소리까지 났다.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수리비가 많이 나오겠구나. 엔진까지 망가졌으면 폐차해야 하나. 그러면 차를 새로 사야 하나.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보닛을 열어봤어야 했는데. 짧은 순간에 별생각이 다 지나갔다.


조금 전만 해도 그날은 더없이 평온한 휴일이었다.


정오가 조금 못 된 시간이었고 며칠 전부터 입기 시작한 싱글코트가 딱 맞는 날씨였다. 연휴라고 해도 어디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에서 보내는 편인데, 그날은 모처럼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다.


차를 몰고 낙동강을 끼고 이어지는 강변대로를 따라 삼락생태공원으로 갔다. 하늘은 맑고 파랬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참을 걸었다. 바람은 차지도 덥지도 않았다. 걷다가 벤치 하나를 골라 앉아 가져간 바카라을 펼쳤다. 산바카라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도 간간이 눈앞을 스쳤다.

누구를 만나기로 한 것도 아니었고 꼭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걷고 싶으면 걷고, 앉고 싶으면 앉았다. 바카라을 몇 쪽 읽다가 고개를 들면 가을볕이 눈앞에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그렇게 한참을 보내고 나니 '한글날' 연휴 첫 날을 집 안에서 뒹굴던 몸도 조금 가벼워진 듯했다. 그렇게 기분좋은 연휴 둘째날이 되는 줄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차에서는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평소와 다른 소리가 난 것도 아니었고 운전하는 데 불편함도 없었다. 아파트 입구가 보일 때까지 그날은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단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계기판에 경고가 떴다.


보험사에 견인을 요청하니 40분쯤 걸린다고 했다.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워둔 채 기다리다가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사발면 하나와 삼각김밥 하나를 샀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편의점 라면도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한번쯤 그렇게 먹어보고 싶었는데, 막상 내 앞에 놓고 보니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다. 면을 몇 젓가락 먹다가 유리창 너머에 세워둔 차를 한 번씩 바라봤다. 혹시 불이나 붙는 건 아닌지 싶어서 였다.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보험에서 산정하는 내 차의 가격은 이제 300만 원 남짓이다. 그 정도의 수리비가 나온다면 고쳐 타는 것이 맞을까. 그렇다고 그 돈으로 지금 타는 차만 한 중고차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예 차 없이 지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출퇴근이야 지하철과 버스를 타면 되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어딘가를 가거나 주말에 움직일 때는 불편할 것 같았다.


사발면 하나를 앞에 두고 폐차와 수리와 새 차 사이를 혼자 왔다 갔다 했다.

견인차는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기사는 차 주위를 한 번 살펴보더니 계기판에 어떤 경고가 떴는지 물었다. 엔진이 과열됐다고 하자 잠시 보닛 안을 들여다봤다.


“엔진이 식었으니까 잠깐 시동 거는 건 괜찮습니다.”


기사는 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차를 앞뒤로 움직여 견인하기 좋은 방향으로 다시 세운 뒤 시동을 껐다. 이어 견인 장비를 연결하고 차를 고정하는 손놀림에 망설임이 없었다.


준비를 마친 뒤 나는 견인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발치에는 자동차 배터리 서너 개가 놓여 있었다. 발을 둘 자리가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다지 불편한 줄도 몰랐다. 마음이 더 불편했던 모양이다.


처음 만난 기사와 나란히 앉아 가는 것이 어색해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보닛을 열어봤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 수리비 많이 나오면 그냥 폐차해야겠습니다.”


기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경고 뜨고 바로 멈췄으면 별문제 없어요.”


엔진이 과열된 상태에서 계속 운전하면 차가 더 심각한 상태까지 갈 수 있는데, 경고가 뜬 뒤 바로 멈췄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가 꽤 위로가 됐다. 하필이면 집에 거의 다 와서 경고가 뜬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변대로 한가운데였다면 차를 세울 곳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비소에서는 원인을 금방 찾았다. 차가 오래되면서 냉각수를 엔진 쪽으로 보내는 호스가 삭았고 그 틈으로 냉각수가 새어나간 것이었다. 정비사는 연결된 호스 세 가닥을 모두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부품값 12만 원에 공임 25만 원.


“그럼 37만 원이네요?”


보닛에서 연기가 피어 올라오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머릿속으로 그렸던 액수보다는 훨씬 적었다. 엔진을 통째로 손봐야 한다거나 폐차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수리를 마친 뒤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자 엔진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소와 같은 소리를 냈다. 계기판에도 더는 경고 문구가 뜨지 않았다.


정비소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오전의 날씨는 그대로였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고 가을볕도 좋았다. 몇 시간 전 같은 길을 지나 삼락생태공원으로 갈 때에는 계기판을 쳐다볼 일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신호에 걸릴 때마다 계기판으로 눈이 갔다.


큰 고장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아파트 앞에서 보닛 틈으로 연기가 나오는 것을 보았을 때만 해도 차를 폐차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시 내가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차에서 내려 몇 걸음을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보닛을 열었다.


정비소에서 채워 넣은 냉각수가 통 안의 눈금 사이에 그대로 차 있었다. 잠시 들여다본 뒤 보닛을 닫았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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