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동기는 내가 잊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온 동기가 가방에서 비닐봉투 하나를 꺼냈다. 안에는 지난주 산에서 직접 캤다는 자연산 더덕이 들어 있었다. 매주 산에 올라 약초를 캔다는 사람이다. 그는 더덕을 소주병으로 두드려 으깬 뒤 1리터쯤 되는 플라스틱 물병에 넣고 소주 두 병을 부었다. 물병을 세차게 흔들자 얼마 지나지 않아 거품이 가득 올라왔다.
2년 전, 나는 완주에서 1년 동안 장기교육을 받았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온 사무관 200여 명이 스무 명 남짓씩 분임을 꾸려 수업을 듣고 과제를 했다. 꼬박 1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얼굴을 맞댔고, 같은 숙소를 쓰는 사람들과는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다. 교육이 끝난 뒤 각자 근무지로 돌아갔지만 만나면 금세 그때로 돌아간다.
서울시에서 근무하는 그 동기가 출장차 부산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시청 동기 여섯 명이 저녁에 모였다. 산에서 캔 더덕을 부산까지 챙겨 온 마음이 고마웠다. 물병이 비어갈 때마다 다시 소주가 들어갔다. 나중에 테이블에 놓인 빈 병을 세어보니 열두 병이었다. 내가 세어본 데까지는 그랬다.
술잔이 몇 차례 돌자 완주에서 지내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누구는 그때 일을 또렷하게 기억했고, 누구는 같은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고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서로 자기 기억이 맞다고 우기다가 웃었고, 목소리도 조금씩 커졌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여성이 서 있었다. 내가 공무원이 되어 처음 신규교육을 받을 때 같은 분임이었던 동기였다. 33년 전이었다.
얼굴을 보자 오래전 교육장에서 있었던 한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당시 신규교육은 4주 과정이었고 첫 일주일은 합숙이었다. 처음 만난 교육생들을 빨리 친하게 만든다며 레크리에이션 시간도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몇 사람과 함께 앞으로 불려 나갔다. 어떻게 뽑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진행자가 자기 이름 석 자로 삼행시를 지어보라고 했던 것은 기억난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에 맞춰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된 이야기를 했다. 안방에서 뒹굴고 있는데 선배 언니에게 전화가 왔고, 할 일이 없으면 공무원 시험이나 한번 봐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시험을 봤고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대단히 기발한 삼행시는 아니었지만 이름과 이야기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33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그녀의 이름과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15년쯤 전에는 한동안 같은 층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체납세 특별징수를 위해 꾸려진 조직이 내가 일하던 시청 14층에 들어왔고, 세무직이던 그녀도 그곳에서 근무했다. 그렇다고 가까이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복도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고, 다시 부서가 갈린 뒤에는 얼굴을 볼 일도 거의 없었다.
지난해 그녀가 서기관으로 승진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같은 해 공직생활을 시작했지만 직렬도 달랐고 걸어온 길도 달랐다. 나도 요즘 퇴직하기 전에 서기관을 달 수 있을지, 달더라도 얼마나 근무할 수 있을지를 가끔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승진 소식을 듣고 난 뒤에는 33년 전 같은 분임에서 교육받았던 동기라는 사실과 함께 지금의 직함도 의식하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먼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뜻밖의 말을 했다.
“그때 우리 분임장이었잖아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신규교육 때 내가 분임장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4주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흔적조차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33년 전 그녀가 무대에 올라 했던 삼행시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분임장이었다는 사실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잠깐 인사만 나누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 이야기는 술자리로 이어졌다. 나는 그녀의 일행들과 시청 근처 수제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금 전까지는 2년 전 교육 동기들과 누구의 기억이 맞느니 틀리느니 하며 웃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33년 전의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모두 공직에 막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지금 맡고 있는 자리도 없었고, 서로를 부르는 직함도 없었다.
나는 아직도 무대에 서서 자기 이름으로 삼행시를 하던 그녀를 기억한다. 그녀는 내가 까맣게 잊어버린, 분임장이었던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