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이 줄었다.

정원표에 없는 빈자리

by박계장

결재 버튼을 누르기 전에 화면을 한 번 더 본다. 결재란에는 두 칸이 놓여 있다. 팀장, 과장. 예전 같으면 그 앞에 기안자인 주무관의 자리가 하나 더 있었을 것이다. 같은 문서작성 화면인데 한 칸이 줄어든 모습이 자꾸 눈에 걸린다.


어제 나는 사무관으로 승진한 지 4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문서를 기안해 결재를 올렸다. 그동안은 직원들이 작성한 문서를 읽고 빠진 내용을 짚거나 문장을 고치는 일을 해왔다. 삼십 년 가까이 수도 없이 써온 기안문이니 방법을 잊은 것은 아니다. 다만 팀장 자리에 앉아 다시 기안자가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우리 팀에는 나를 제외하고 직원 네 명이 있었다. 정원은 세 명이었지만 정신건강 사업이 늘면서 한 명을 더 배치해 두고 있었다. 올해 초 자살예방 업무가 확대되어 별도의 자살예방TF가 만들어졌고, 담당 직원 한 명도 그 업무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사람이 줄었지만 일도 함께 빠져나갔으니 그때는 별문제가 없었다.


이번 인사는 달랐다. 우리 팀의 선임직원이 5급으로 승진해 구청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당연히 후임자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사명단 어디에도 우리 팀으로 오는 이름은 없었다.


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자살예방TF가 만들어질 때 우리 팀의 직원 정원도 세 명에서 두 명으로 줄어 있었다. 그 뒤에도 세 명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정원보다 한 명을 더 배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에서 그 한 명이 빠지자 직원은 두 명이 되었고, 숫자상으로는 정원과 정확히 맞았다. 과 전체에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원을 채우고 있는 팀에 한 명을 더 보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원표만 보면 우리 팀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사무실에는 한 사람의 자리가 분명히 비어 있었고, 그 사람이 하던 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자살예방 업무를 떼어낸 뒤에도 정신건강팀에는 스무 개가 넘는 단위업무가 남아 있다. 삼백오십억 원이 넘는 예산을 다루고 여러 센터와 시설을 살펴야 한다. 정신응급 상황이 생기면 경찰과 소방, 의료기관과 협의해야 하고, 중앙부처의 정바카라이 바뀌면 지역에서 실행할 사업으로 풀어내야 한다. 의회 자료 요구와 민원도 수시로 들어온다. 하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날이 많다.


이십여 년 전에는 가족보건팀에서 정신건강 업무를 나 혼자 맡은 적도 있다. 그 기억만 놓고 보면 지금 직원 두 명에 팀장 한 명이 적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사이 센터와 시설이 크게 늘었다. 정신응급, 심리상담, 퇴원환자의 지역슬롯 연계처럼 당시에는 없거나 비중이 크지 않았던 일들도 하나씩 자리 잡았다. 업무의 이름은 같아도 해야 할 일까지 같지는 않았다.


직원들은 처음 며칠 동안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야근을 앞두고 셋이 저녁을 먹다가 한 직원이 나를 보며 말했다.


“팀장님, 우리 업무가 정말 두 명이 할 일은 아니잖습니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엄살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도 실무자 시절 오랫동안 정신건강 업무를 맡았다.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미룰 수 있는 것은 뒤로 보내면서 늦게까지 앉아 있으면 어떻게든 그날은 넘어갔다. 나 역시 그렇게 보낸 날이 많았다. 직원의 말을 듣고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할 수는 없었다.

몇 차례 인력을 다시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업무량과 직원들의 사정을 설명하고 한 사람은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다른 팀에도 사람이 부족하고, 우리 팀은 정원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직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모자란 상황에서 모든 팀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아 있는 일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업무를 다시 나누기로 했다. 세 사람이 하던 일을 두 직원에게 그대로 맡길 수는 없어서 나도 몇 가지 실무를 맡았다. 그렇다고 떠난 직원의 일을 모두 가져올 수도 없었다. 팀 전체를 살피고 문제가 생기면 조정하는 일, 의회 대응과 대외 협력, 각종 회의와 현안을 챙기는 일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업무분장표에 내 이름을 올린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두 직원이 야근을 하면서라도 일을 모두 처리해 내면, 언젠가는 ‘직원 두 명으로도 돌아가는 팀’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겉으로 굴러가고 있으면 그 안에서 누가 얼마나 무리하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팀장이 실무를 나누어 맡고 있다는 사실이라도 업무분장표에는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으로는 다른 말을 기다렸다.


“팀장님까지 업무분장에 넣지 마시고, 바쁠 때 조금씩 도와주시면 됩니다.”


내가 직원이었다면 팀장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 섭섭했던 것도 사실이다.


자신들에게 돌아올 일이 줄어드는데 굳이 말릴 까닭이 없었을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업무가 두 사람이 할 양이 아니라는 말에는 나도 동의했다. 그래 놓고 막상 일을 나누면서는 나를 말려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생각해도 마음이 조금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나라고 다시 실무를 맡는 것이 반가운 것은 아니다. 같은 부서의 다른 팀장이 직원이 올린 문서를 살펴보는 동안, 나는 담당자가 되어 처음부터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만은 않다. 왜 우리 팀만 이런가 싶은 생각도 든다.


공직생활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런 마음에 한몫했을 것이다. 또래 지인들이 모이면 언제부터인가 승진보다 퇴직 이야기를 더 자주 한다. 사무실 화분에 물을 주고 잎을 닦는 데 정성을 들이는 사람에게 “이제 녹지직으로 전직했느냐”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나 역시 공로연수에 들어가기 전까지 실제로 근무할 시간이 삼 년 남짓이다. 그런 때에 다시 담당자의 이름으로 기안문을 쓰게 되었으니 마냥 반가울 리는 없다.


그래도 두 직원에게 빠진 사람의 일을 모두 나누어 주고 나만 예전 방식으로 일할 수는 없었다. 내가 몇 가지를 맡으면 그만큼 두 사람의 일은 줄어든다. 사람은 하나 줄었고 일은 남았으니, 남아 있는 셋이 다시 나누어 맡았다.


어제 문서작성 화면을 열었을 때는 조금 낯설었다. 예전에 쓰던 것과 구성이 달라져 몇 군데 메뉴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손은 곧 예전 방식대로 움직였다. 제목을 쓰고, 내용을 적고, 문장을 다시 읽으며 고쳤다.


실무자 시절에는 제목 하나를 정하지 못해 오래 고민하기도 했다.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다가 퇴근 시간을 넘긴 날도 많았다. 결재가 끝난 문서를 다시 열어 계장과 과장이 어느 대목을 손봤는지 확인하는 것도 오래된 습관이었다. 사무관이 된 뒤에는 내가 문장을 고치는 쪽이 되었고, 기안자의 자리에서는 조금씩 멀어졌다. 어제는 오랜만에 내가 쓴 문서를 과장에게 올렸다.


한동안은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다. 다음 문서는 우리 팀이 업무를 위탁한 한 센터에 계획서 제출을 요청하는 시행문이다. 문서를 보내고 나면 필요에 따라 요청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자료가 들어오면 다시 살펴야 한다. 업무분장표에 적힌 몇 줄에는 그런 일들이 함께 들어 있다.


문서작성 화면을 열어 요청할 내용을 적는다. 몇 군데를 고치고, 더 손볼 곳이 없는지 한 번 읽은 뒤 마우스를 문서처리 버튼으로 옮긴다.


버튼을 누르기 전, 두 칸뿐인 결재란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한 칸은 사라졌지만, 그 사람이 하던 일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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